담론 생산자를 지향하는 90년대 흑인음악 중독자
by 블랙스콜라
한 문화모임에서의 토론 (우리는 '앎' 에 대해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가?)(2)

계속하여 G님이 답글을 달고 대화가 이어졌다.

(G님) 

"일상은 챗바퀴인 듯 하면서도 그것을 채우고 돌아가는 스펙트럼은 다양합니다. 늘 같은 사람들을 만나고 같은 일을 하고 비슷한 상황에 있는 있는 것 같지만 틈새가 있지요. 똑같은 것으로 다가오지 않았던 경험, 어느 순간엔 깜짝 놀랄만한 것으로 받아들이셨던 일들이 님께도 있으셨으리라...? 일상에서도 그렇지만 영화에서도 그런 것들을 자주 발견하곤 하지요. '알고 있는 낯섦'이나 '몰랐던 익숙함' 같은 것들이요. (요지로 날아가는 법에 서툴러 말이 이리저리 샙니다.)

 

일상에 기대는 것이  "출세해서 돈많이 벌고 건강하고 내 가족 탈 없이 건사하는 것만을 최고의 행복으로 여기는 것" 으로 보는 건 옳고 그름이나 나쁘고 좋고의 것관 전혀 별개인 취향의 문제와도 흡사한 것 같아, 이런 식의 대화(?)들은 결국 님과 저의 시각차이로 여겨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님의 글에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하셨으니 서로의 견해를 내놓는 것을 크게 조심스러워할 것은 아니라고 여겨보면서, 다시

 

출세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것이 왜 뭔가 구린 듯한 냄새를 풍기는 것으로 변질되었는지... -사람은 기억에서 자유롭지는 못하지요. 아마도 우리 사회가 그렇게 달려왔던 기억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님께서 그처럼 짚어놓으시니 그 말이 참으로 허접하게 느껴지지 않겠습니까? 출세는 결과일 뿐, 일선에서 제 스스로가 자신을 좀더 진취적인 사람, 생산성을 높이는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단순히 사회적욕구로만 풀기엔 뭔가 놓치는 게 있다고 봅니다. (아니 또 사회적욕구면 어떻습니까? 인간이 가진 욕구들 중 하나가 아니던가요. 다만 온당치 못하게 채우려 할 때 분노해야지요.)  

 

일선이란 어쩌면 그것을 제외한 일상을 풍요롭게 -전 여기엔 경제적, 정신적인 것 모두 포함시킵니다- 하기 위한 도구이지요. 하지만 일이란 것, 보수라는 걸 노동의 착취니 몸, 정신을 제공한 것의 댓가니 하는 것으로만 생각을 푸는 건 실제 일상을 건강하게 사는 덴 별 도움은 커녕 활력마저 잃기가 십상 같습니다. 물론 노동이란 게 (본질적으로) 그렇다할지언정 그 노동 속에서 우리는 그저 아무생각도 없이 돌아가는 기계는 아니잖습니까. 일선에는 동료도 있고 그들와 맞물리는 상황도 있고 그들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숲으로 기어들어가지 않은 바에야 어디를 가든 '관계'가 존재하지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늘상 같은 삶의 반복처럼 보일지라도 결코 직선적이진 않다는 것이지요. 맞춰놓은대로 돌아가는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관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것이든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 느끼는 제 감정과의 대화이든 이 모두를 관계로 보고 싶군요-  속에 있는 한 일선 또한 그저 노동을 제공하고 댓가를 받는 곳으로만 치부하기엔 우리가 그 틈/곡선에서 마주치는 것들이 하찮지 않으며, 일선에서 제공한 자신의 시간도 자기 삶가운데 한 토막으로 소중하고 중요함을 지각하는 사람은 일선을 경제적 등식으로 풀기에 앞서 어떻게 하면 좀더 나은 방법으로 채울 수 있을까를 고민하겠지요. 그 여타의 시간을 제대로 쓰고자 하는 것을 넘어, 진짜 내 삶 내 시간을 갖기 위한 방편으로써의 거기까지도 기왕이면 건강하게 살아보고 싶어하는 것이지요. 출세라는 건 그 다음 것으로써, 그와 같은 사람에겐 또 별개의 것이기도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뛰면서, 돈 많이 벌면 또 어떤가요? 그건 건강한 게 아닌가요?

 

그런 의미로 전  "내가 직접 확인해보지 않은 행복을 그대로 접수할 수 없으니 말이다. 남 말만 믿고 무임승차하는 것은 줏대없는 짓이니, 땀흘리지 않은 불로소득치고 실속 없는 것이 많은 법이니." 하는 말씀을 다시 거론시킨 겁니다. 직접 확인이 무거운 책 속에만 있지 않으며, (출세와는 별개의 것으로) 일선까지도 건강하게 사는 사람이 그 과정 가운데서 발견하는 것은 '따라하기' 도 아니고 '무임승차'도 아니며 '불노소득'도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것이 왜 공짜입니까? 내가 고민하고 고민한 만큼 움직이는 것인데요? 여기 카페는 아이들도 상당수 드나드나 보지요? "대개 순진한 어린애들이 그렇" 다니, 아이들을 상대로 훈계한 말씀이셨던 걸 저는 님의 친절한 답변을 보고서야 아차, 했습니다.--;

 

실상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책이라고 다 같지 않고, 양서와 그렇지 못한 것으로 나눌 수 있는 어떤 등급이 있음에는 공감합니다. 다만 그 외를 제외한 평범한 일상에 대한 시선이 유연하지 못한 게 안타까웠거나 잠시 노여웠을 뿐입니다. 다양한 채널과 코드로 볼 수 없으니 또박 또박 일러주는 책은 얼마나 경이롭습니까. 한데 이 부분은 저로써도 이해가 가는 부분입니다. 다양한 채널로 바라보려해도 그리 읽힐 수 없는 일상은 또 얼마나 퍽퍽하고 단조로운지요. 하지만 그걸 얻기 위해 일상에다 시간을 할애하기엔 너무 빠뜻하지요. 아마 사람들이 다른 채널 즉, 음악, 영화, 책, 그림, 사진 등을 통해 얻는 만족엔 그런 것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타인을 통한 관계 속에서 삶의 스펙트럼은 다양해지고 연대감라는 고리를 만들어내지만, 그 고리는 때때로 눈치없이 불편하고 실속없는 잦은 오해들로 삐그덕거릴 때가 있지요. 그런 부딪침 내지 불편함은 피하면서 새로운 채널과 스펙트럼은 갖고 싶은..... 아마도 피로에 지친 탓이겠지요. 어쩌든 저쩌든 계속해 달려야 한다고 하니요.

 

 

< 님이 말씀하신 '진리'니 '지혜'는 무엇을 뜻하는지요? 제 글 속에는 그런 단어가 없습니다. 다만 제가 알기로는 설사 평생 노동으로 일관한 농부라해서 절로 진리, 지혜를 깨달을리 없고, 지구 상의 모든 책을 읽었다고 지혜를 깨우칠리 없으며, 평생 주방을 지킨 주부라해도 마찬가지지요.  그러니 농부도 농부 나름이고, 책 읽은이도 책읽는 이 나름이며 주부도 주부 나름이 아닐까싶습니다.>

 

아, 님은 개념들에 대한 명쾌한 해석을 요구하시지요? '진리'니 지혜' 니 저의 모호한 어휘 남발에 실소하지 않으셨까도 싶군요. 불과 몇 차례에 불과한 방문이었지만 님께 본 것은 님의 표현대로 '갈증'이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누군가/어느 철학자의 개념어를 가져온 것이 아니고 그저 보통사람이 대화 속에서 '뭐지?' 하고 고민하지 않는 수준으로 통용되는 일반적 언어로 사용했을 뿐입니다. -여기서 정말로 실소하시겠습니다? - 실체, 실재, 진실, 본질... 저는 이 단어들이 뭐가 어떻게 틀린지 잘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제가 그 말을 사용한 데는 어제 길게 말씀드린 그 속에 있듯이 무엇이 진짜일까 -진리 = 어김없는 그 이치- 를 알아가는 덴 책 속에만 발견하는 건 아닐거라는 것이었는데, 오늘 님의 답변을 보니 님 또한 그렇게 짚으셨군요. 한데 왜 처음엔 그리도 무색하고 퉁명스럽게(?) 전달하셔서 오해를 사게 하셨는지, 제가 되려 겸연쩍고요.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

 

<설사평생 노동으로 일관한 농부라해서 절로 진리, 지혜를 깨달을리 없고, 지구 상의 모든 책을 읽었다고 지혜를 깨우칠리 없으며, 평생 주방을 지킨 주부라해도 마찬가지지요. 그러니 농부도 농부 나름이고, 책 읽은이도 책읽는 이 나름이며 주부도 주부 나름>

 

님의 견해와 제 생각은 여기서 접점하는 듯 하군요. 처음에 님께선 이런 설명을 배제, 또는 굳이 세세히 나열하지 않은 채 견해를 밝히셨는데, 저 또한 님의 견해에 다소 반발심(?)을 갖게 된 것은 님이 설명하지 않은 그 부분에 해당하는 것이었지요. 님이 '책도 읽는이 나름'이라고 하셨듯이 제가 말씀드린 일상인 또한 그저 그렇게 손을 놓아버린 듯한 삶을 사는 이들을 말함이 아니었지요. 어쩌면 서로 같은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데... 뭔가 아쉽군요. 아쉬운 게 뭔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간간히 들러보며 찬찬히 들여다보겠습니다.

 

 

참, 펌글 말입니다. 얘기가 삐딱선을 타다보니 진중권 씨 얘기가 길어져 제가 그 글에 다른 견해라도 가진 것처럼 보이셨나본데, 전 그 글이 전하고자 하는 요지를 이해하고 있고 특별한 이견이 없습니다. 다만 사회적 비판이란 사회 바깥에서 해야만 정말 온전한 소리가 되는 건지에 대해 판단이 잘 서지 않았기 때문이었지요. (상대에게 내가 당신의 적이라는 걸 드러내지 않으면서 꼬집는 방법은 고수들의 것이잖습니까? -진중권 씨가 그런 분이라고 하는 건 아니고요- 까발리는 방법 말고도 취할 수 있는 방법이란 게 있지 않을까... 대다수의 사람들은 결국 오프라인을 통해 얻는 정보가 많으니까요. -아, 그런 의미에선 우리가 쉽게 접하는 정보 외에 다른 시선, 평형을 잃지 않은 시선들을 접하기 위한 방법으로써의 즐겁지만은 않은 독서를 권유할 수 있겠군요. 다시 원점인가요?--;)

 

제가 뭔가 단단히 잘못 본 것인지 님 말씀을 다시 폈다가 화들짝,

 

"평생 단 한 권의 책만을 읽었다는 이가 있다. 걱정마시라, 설사 단 한 권 읽지 않아도 행복전선에 하등 문제될게 없으니까. 문제는커녕 앞에서 누누히 말한대로 안 읽으면 안 읽을수록 더 행복하고, 확신에차며 룰루랄라~ 마냥 삶이 즐거울 수 있다. 일상의 상식에 기댄 삶일수록 행복전선은 더욱 발치 가까이 있게 마련이니, 당신이 행복하고싶다면 결코 책 따위에 정신을 뺏기면 안 된다."

 

저는 다시 보아도 님 말씀에서 어떤 '비하'가 보입니다. 인문에 대한 성찰과 현장 내로의 실천을 해보고자 하는 성격을 가진 카페라면 이만한 소리도 있어야지요. 제가 밑천이 짧은 소리로 성급하게 나서니 그것이 못마땅하셨다면 별 도리가 없습니다만, 그래도 인문학 관련 카페를 끌어가시는 분이신데 적어도 아카데미컬한 자세쯤은 원했던 것이지요. 책 열심히 보고, 읽고 고민한 것 일상에 열심히 대입해보고, 그리고 어디선가 자꾸 안 맞으면 풀어내보고.. 그게 아니면 비평 혹은 여러 사회적 현상들에 대한 섬세한 시선, 그 자체로 가시고요. 그런 책 속의 내용들만 가지고 고민해도 만만찮으실 텐데 어찌 그런 등급의 책을 펴보지 않는 사람들까지 굳이 옆에 놓고 비판하시는지요? 그것이 보기에 좋지 않더라는 것이지요. 님께서도 제가 다시 언급한 님 말씀을 다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안 읽으면 안 읽을수록 더 행복하고 확신에 차며 룰루랄라~" 이 말씀이 저뿐 아닌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정녕 모르시는 건지, 모른 체 하고 싶은신 건지.. 그 말씀에 대한 오해가 생기는 것 같아 제가 '친절한 설명' 운운하며 질문했던 것입니다. 님 말씀 뒤에 있는 것이 무언지 말입니다. 진정 저와 제 동료가 잘못 느낀 것인지, 그렇다면 수정하고자 했지요. 혹 다른 인문학 관련 카페는 들여다보시는지요. 굳이 함께 공부하는 이 외의 일상인들을 옆에다 놓고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건, 아직까진 본 적이 없습니다. "


J님은 다음과 같은 답변으로 대화를 마무리하셨다.

(J님)

"인문학 관련 카페를 끌어가시는 분이신데 적어도 아카데미컬한 자세쯤은 원했던 것이지요. 책 열심히 보고, 읽고 고민한 것 일상에 열심히 대입해보고, 그리고 어디선가 자꾸 안 맞으면 풀어내보고. 그게 아니면 비평 혹은 여러 사회적 현상들에 대한 섬세한 시선, 그 자체로 가시고요. 그런 책 속의 내용들만 가지고 고민해도 만만찮으실 텐데 어찌 그런 등급의 책을 펴보지 않는 사람들까지 굳이 옆에 놓고 비판하시는지요? 그것이 보기에 좋지 않더라는 것이지요. 님께서도 제가 다시 언급한 님 말씀을 다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안 읽으면 안 읽을수록 더 행복하고 확신에 차며 룰루랄라~" 이 말씀이 저뿐 아닌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정녕 모르시는 건지, 모른 체 하고 싶은신 건지.. 그 말씀에 대한 오해가 생기는 것 같아 제가 '친절한 설명' 운운하며 질문했던 것입니다. 님 말씀 뒤에 있는 것이 무언지 말입니다. 진정 저와 제 동료가 잘못 느낀 것인지, 그렇다면 수정하고자 했지요. 혹 다른 인문학 관련 카페는 들여다보시는지요. 굳이 함께 공부하는 이 외의 일상인들을 옆에다 놓고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건, 아직까진 본 적이 없습니다."  

 

*******

위 문장을 거듭해서 읽고 또 읽어봤습니다. 실로 뼈아픈 지적이자 두루 많은 것을 숙고케 하는 말씀이군요. 특히 "혹 다른 인문학 관련 카페는 들여다보시는지요. 굳이 함께 공부하는 이 외의 일상인들을 옆에다 놓고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건, 아직까진 본 적이 없습니다."  라는 부분은 차마 부끄럽기까지합니다. 이것저것 읽고 생각하노라하면서도 막상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알 지 못하며, 실천은커녕 기왕 알고있는것조차 정확한 것인지 거듭 확인하고 이해하고자하는 수준이니..... 돌아보면 적지않은 세월이건만 여지껏 이러고 있으니 참으로 더디고 미욱한 노릇이지요. 지적하신 말씀 깊이 새기며 성찰의 주제로 삼을까합니다.  


그리고 나는 다음과 같은 답글을 달았다.

"저도 모르게 끌리게 되는 두 분의 '글을 나누심' 이었습니다.

 

일이 있어 나눠서 읽다가 여유를 내어 전체가 이어지게 읽으니

부분으로 읽을 때는 마음에 걸리기도 하고, '취향 차이가 아닌가?' 라는

어쭙잖은 의문도 들던 것이 명쾌하게 해소되며

'깊은 탄복' 만 남았습니다.

 

이래저래 주워들은 흔적들을 묶어서

'아는 것은 저주이다.' 라는 문장 하나를 제가 살아가는 길의 지침으로

걸어놓았습니다.

(알아야함을 멈출 수 없기에 '저주' 입니다. 저주에 걸린 듯 앎의 꼬리를

쫓아야할 것입니다)

 

'참된 앎, 그리고 그에 대해 가져야할 자세' 에 대해 깨우침을 주신 두 분께

감사 말씀드립니다.

 

항상 행복하십시요."

이렇게 달아놓은 후 '프레시안 박쥐 평론' 사태(?) 까지 접하고 나니 나의 답글이 너무
안일했다는 생각이 팍팍 들기 시작했다. 두 상황 다 '특정한 배경을 가지고 특수한 글을
생산해낼 수 있는 사람들' 에게 '그러한 방식의 발화나 글을 쓰지 말라' 는
점잖은(?) 강요가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내 개인에게는 이번 박쥐 평론은 '차후에나 완벽하게 훑을 수 있더라도' 상당히
고마운 글이다. 습득해야할 개념어나 읽어야할 책의 목록을 짐작할 수 있는
'저자' 의 이름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나같은 녀석은 이러한 '효용' 에서
이 평론을 소비할 것이고, 저 평론의 필자인
'문화평론가' 가 언급했던 '집필을 하게한 대상' 에게는
또 다른 효용이 존재할 것이다.

취사선택을 잘 하는 것이 이토록 혼란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현명한 무기가 아닐까 한다. '이러한 글도 우리의 선택의
폭에 있다' 는 것은 '비평' 이라는 상품(생산자 입장에서는
'작품' 일 수도 있기에 이런 언급이 좀 죄송하다) 을 다양한 형태로
소비할 수 있는 '권리' 를 가졌다는 측면에서 '절대 나쁘지 않다.'

미래에 대한 빚을 지고 있다는 마무리는 비겁하지만
제발 우리의 후세에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세계를
물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쨌든 두 상황 다 나 개인에게는 생각을 많이 하는 좋은 계기였다.
관련된 분들께 감사인사드리며 물러간다. 꾸벅 (-_-)(_ _)



by 블랙스콜라 | 2009/05/04 18:50 | 트랙백 | 덧글(0) |
한 문화모임에서의 토론 (우리는 '앎' 에 대해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가?)(1)
문제는 글을 쉽게 쓰는 것이 아니다


* 아래의 대화가 이루어진 것은 Wallflower 블로그 내에서 '박쥐' 평론에 관련된
상황이 이루어지기 전이다.
약간 다를 수 있는 상황이나 '상식이나 일상' 을 들어 반론하는 G님의 발화에서 Wallflower 블로그의
주인장께서 언급하신 '반지성주의' 의 실마리가 있지 않을까 하여 정리해 본다. 
연달아 이어진 상황(아래의 대화에서 박쥐 평론 관련 상황까지)이 유사한 상념을 던져주면서
성찰을 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발단은 J님의 개인적인 생각을 밝힌 글이었다.



" (J님) 아름다운 당신

1.
젊은시절, 잠시 교회에 나갔을 때 일이다. 주일날 설교를 듣다보면, 어렵쇼,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아냐? 누가 볼새라 쥐죽은듯 설교를 듣던 기억이 난다. 불특정 다수일게 뻔하건만 도둑 제발저린다고, 내 스스로 그렇게 생각한 거다. 하긴 나만 그랬을까. 홍상수 영화를 볼 때도 그렇다. 등장인물들은 대개 자의식에 가득찬 3류 지식인들인데, 하나같이 여자꽁무니 쭐레쭐레 따라다니며 어떻게해볼까 궁리나 하는 위선적 속물들이다. 다름아닌 내가 바로 그렇기에 그렇다. 소설을 읽을 때, 혹은 어떤 글을 읽을 때도 종종 그런다.   

나는 간혹 감상적인 기분이 들면, '아름다운 당신' 이라고 제목을 붙인 후 글을 써나간다. 앞에서 목사 설교가 그랬듯이 불특정 다수를 지칭한 표현인데, 행여 읽는 이가 특정한 누구로 오해하지 않을까싶다.  

 
2. 우리가 기왕에 알고 있는 확신들, 혹은 이거다, 라고 믿었던 것들이 실은 착각에서 비롯되었거나 근거 없는 것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행복이고, 이것이 바로 정답이라고 말하지만 실은 아닐 수 있다는 것. 반복하거니와 '아름다운 당신'은 단지 순간의 기분에서 비롯된 말일수 있고, 특정한 누구일 수 있으며 불특정 다수일 수도 있다. 

 

3. 책을 읽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마음의 양식, 지식, 교양을 쌓기 위해서거나 취미삼아 읽을 때도 있다. 어떤 경우건, 지속적으로 읽다보면 진리는 결코 하나가 아님을, 내가 그동안 알고있던 것이 전부가 아녔음을, 내내 자신감에 차있던 사실이, 행복해 죽겠다고 여겼던 것들이 실은 말짱 꽝이었다는 것을. 결단코 사실이라고 믿었던 것이 가짜라는 것을, 그동안 내가 믿었던 것은 한낱 피상적이거나 전혀 근거가 없었다는 것도 알게 한다.

 그러므로 교양수필에나 나옴직한, 책은 많은 지식을 얻고, 교양을 쌓고, 삶이 행복해진다는 말은 전혀 근거가 없다. 실제는 매사를 의심케하고, 다시 확인케 하고, 되묻게 하니 행복한게 아니라 오히려 불행해질 수 있다. 뿐만인가.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뭔가를 많이 알아서 뿌듯한게 아니라 알아봐야할 것이 많아지고, 뭐가 문제인지 더욱 궁금해진다. 허기가 지고 회의적이 된다면 차라리 읽지 않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식자우환이랬다고, 차라리 모르는게 약일테니. 그러나 그럴수는 없다. 내가 직접 확인해보지 않은 행복을 그대로 접수할 수 없으니 말이다. 남 말만 믿고 무임승차하는 것은 줏대없는 짓이니, 땀흘리지 않은 불로소득치고 실속 없는 것이 많은 법이니.   

 

4. 평생 단 한 권의 책만을 읽었다는 이가 있다. 걱정마시라, 설사 단 한 권 읽지 않아도 행복전선에 하등 문제될게 없으니. 문제는커녕 앞에서 누누히 말한대로 안 읽으면 안 읽을수록 더 행복하고, 확신에차며 룰루랄라~ 마냥 삶이 즐거울 수 있다. 일상의 상식에 기댄 삶일수록 행복전선은 더욱 발치 가까이 있게 마련이니, 당신이 행복하고싶다면 결코 책 따위에 정신을 뺏기면 안 된다. 어쨋든 책을 손에 드는 순간 믿도끝도 없는 고뇌와 회의로 둘러싸일테니.

 

5. 어떤 책을 읽을 경우,  과거는 대충 뜻을 파악한 것만으로 다 이해했거니 했다. 요즘은 요지 파악은 그만두고 우선 책에 나오는 개념 하나라도 정확히 알아야겠다, 라고 생각한다. 글을 쓰다보면 이런 저런 개념어나 단어를 구사하기 마련인데, 지금 돌아보면 정확히 모르면서도 마구 남발한 경우가 허다했다. 가령 근대철학사에 자주 등장하는 정신이니 영혼, 실제, 주체, 초월자를 비롯해서 불가지론, 무의식, 구조, 타자, 포스트모더니즘,  이데올로기, 욕망, 탈주, 아비투스, 에피스테메 등 숱한 개념들을 정확한 뜻을 모른채 사용했던거다. 어디 이뿐일까.

 근자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책 속에 나오는 단어, 개념어를 비롯,  어떻게 하면 보다 투명하고 정확히 삶의 실상을 이해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나아가 어떤 진술이 과연 근거가 있는 것인지, 내가 생각했던 것들이 확실한 것인지, 남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고싶다. 그러기위해서는 우선 개념어들을 정확히 이해하고, 구사하는게 선결과제임을 뒤늦게 알게된 거다./ 계속 " 

그리고 G님의 답글이 달렸다.


" (G님) 검색을 통해 여기 카페를 알고, 듬성듬성이지만 그렇게 들락거린 게 한 달 쯤 되는 것 같습니다. 굳이 회원으로 가입할 필요성은 없어서 객처럼 오가다 궁금한 게 있어 여쭙고자 가입했습니다.

 <내가 직접 확인해보지 않은 행복을 그대로 접수할 수 없으니 말이다. 남 말만 믿고 무임승차하는 것은 줏대없는 짓이니, 땀흘리지 않은 불로소득치고 실속 없는 것이 많은 법이니.

평생 단 한 권의 책만을 읽었다는 이가 있다. 걱정마시라, 설사 단 한 권 읽지 않아도 행복전선에 하등 문제될게 없으니까. 문제는커녕 앞에서 누누히 말한대로 안 읽으면 안 읽을수록 더 행복하고, 확신에차며 룰루랄라~ 마냥 삶이 즐거울 수 있다. 일상의 상식에 기댄 삶일수록 행복전선은 더욱 발치 가까이 있게 마련이니, 당신이 행복하고싶다면 결코 책 따위에 정신을 뺏기면 안 된다.>

 앞에서 듬성듬성 오갔다고 말씀드렸지요. 거기다 실제 사람을 겪어본 것도 아니지요. 제가 본 건 어디까지나 글 뿐입니다. 그러니 제가 님 말씀에 의아해한 부분에도 약간의 오해가 있을 수 있고, 님 또한 다르지 않을 수도 있을 테지요. 가입 후 첫인사이면서 그다지 매끈거리는 얘기를 꺼내는 게 아니어서 이리 말이 길어집니다. 각설하고,

다시 인용한 님의 생각, 그것에 대한 좀더 친절한(?) 설명을 듣고 싶군요. 감각이란 게 일으키는 오류가 적지 않으니 느낌이란 걸 확고하게 신뢰한다는 건 참으로 우습습니다만, 님의 표현이 매우 거칠고 도도해 순간 당혹스러웠습니다.

 남이 한 말들이란 소문에 불과한 것인지요? 그래서 확인이란 건 꼭 책, 문서를 통한 것이어야 하는지요? 그렇다면 책은 남의 말이 아닌 건지요? 한 인간이 살아가며 겪는 경험과 과정 속에서 얻은 작은 지혜들로 찾아낸 행복은 '진정한' 것이 아닌 건지요? 그것마저도 어디선가 검증을 받아야 하는 것인지요? 그래야만 안심할 수 있는 행복인 건지요? 그것을 인증해주는 건 누구인지요? 무언가를 바라보는 시각은 시대마다 달라서 님께서 말한 고전에 대한 해석도 다양하지요? 그런 관점에서 다시 본다면 님의 말씀으로 다시 돌아갈 수도 있겠지요? '허기가 진다'는 말씀 말이지요. 님께서 쓴 말에는 더 심오하고 각별한 의미가 있고, 그게 채 다 드러나지 못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누누히 말한대로 안 읽으면 안 읽을수록 더 행복하고, 확신에차며 룰루랄라~ 마냥 삶이 즐거울 수 있다"는 말씀은 평생을 제 논밭만을 일구며 자연 속에서 늙어간 한 농부에겐 진리도 지혜도 없다는 듯 들립니다. 있어보니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지식인들이 왜 가끔 비판대에 오릅니까? 꼭 실천이 결여된 것만을 가지고 하는 게 아니지요. 책 읽고 비평하기도 바쁘지요. 밖에 나와 갖가지 사회운동 해가면서 언제 공부하겠습니까. 단지 책과 말속에서 그치고마는 화려함 내지 수려함 때문이지요. 올려놓으신 펌글에서 진중권 씨의 언변을 언어차력쇼로 표현한 이의 글을 읽고 그 명랑 혹은 발랄한 유머에 웃었습니다만, 그것만 지적 당해야 할 건 아니지요. 지금 우리가 서있는 자리에서 자본이란 건 어찌할래야 어찌해볼 수 없는 가장 큰 틀이지 않습니까? 거기 바깥은 없을 것도 같지요. 어디의 '바깥' 이렇게 표현하는 건 다분히 선택된 관념적인 어휘가 아닐런지요? 자본이 존재치 않는 어떤 판타지적 세계가 아니라 자본계 안에서 자본이 위시하지 못하게, 그것을 무시함으로서 무력해질 수 있도록 만드는 어떤 내부적 힘, 연대적 공동체 관계가 아닐런지요? 결국 자본의 상징적 질서 안에서 싸운다는 것이지요. 책 썼으면 책 선전하러 나올 수도 있는 것이지요. 자본에 아부하는 자세로만 보는 것도 유연한 시선은 아닌 듯 하고요, 다만 싸우려는 자마저 자본을 가지고 싸우거나 자본의 힘을 빌리는 싸움은 자본의 위력을 재긍정하는 일밖엔 되지 않는 것이지요. 아, 어쩌다 진중권 씨로 빠져 자본 얘기까지 나왔습니까? 다시 각설하고,

 지식인 얘길하다 삼천포로 빠졌군요. 그러니까 제 생각은 -저 자신도 그저 '제 생각만'을 말할 수밖에 없군요-  지식인들이 그들이 알고 있는 걸 행동에 옮기지 않는 것이 문제(?)의 다가 아니라, 그들이 아는 것을 힘 또는 권력으로써 과시할 때 그들이 평범한 일상인들로부터 비웃음을 받는 거라 여깁니다. 책, 더구나 님께서 지속해서 보고자 하고 함께 읽고자 하시는 책들은 두 말할 것도 없이 훌륭한 것들이지요. 님 글에 제 심리가 불편하게 작동한 것은 책이 아니라, 그 책들을 대하지 않거나 모르는 일상인들에 대한 무시가 담겨 있는 듯하여 그랬지요.

저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는 사람으로써, 그렇잖아도 하루를 어찌 지나는 줄도 모르게 바삐 사는 직장인으로써, 그렇게 훌쩍 지나버리는 시간들을 붙잡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주부로써, 왜 모두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로 가끔은 침울해지는 엄마로써, 발끈한 것이지요. 여기 별볼 것 없고 아는 것 없고 하찮게 일상을 사는 우리도 고민합니다! 하고요.

 어떤지요. 행복은 하나가 아니던데요. 그리고 한 가지 행복도 경우와 사건에 따라 색깔을 달리하던데요. 일상도 달리보면 다채롭습니다. 책만이 진리를 말하진 않지요. 예수께서도 오죽하면 글자 하나 남기지 않으셨을까요. 나의 말들은 너희 속에서 살아 움직여야 한다.... 그런 뜻이지 않을까요? 진리는 굳어지면 독입니다. 그래 님께서도 여러 관점의 책들을 섭렵하고 계실 거라고, 그렇게도 여깁니다만 그 진리가 '좌판에서 오래 살아 남은' 책을 통한 것이란 데 찍으신 방점이 약간 불편했음을 말씀드립니다. 하루를 살고 가는 하루살이에게도 나름의 의미가 있고 진리 혹은 교훈이 있어야지요. 그것들보다 무궁히 오랜 시간 속에서 서로를 겪어내는 우리 인간에겐 말이죠. 한 달을 못 넘기는 책을 통해서도 우린 배울 수 있습니다. '배운다' 는 것에 특이하고 독특한 차원의 것만 붙이지만 않는다면, '배움'이 '지식'과 동의어가 아닌 것을 안다면요.

고뇌하는 너의 가슴속에만 진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모든 마당과 모든 숲 모든 집 속에서 그리고 모든 사람들 속에서 진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목적지에서 모든 여행길에서 모든 순례길에서 진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길에서 모든 철학에서 모든 단체에서 진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모든 행동에서 모든 동기에서 모든 생각과 감정에서 그리고 모든 말들 속에서 진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마음속의 광명뿐 아니라 세상의 빛줄기 속에서도 진리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온갖 색깔과 어둠조차 궁극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

진정으로 진리를 본다면 진정으로 사랑하기 원한다면 그리고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광활한 우주의 어느 구석에서도 진리를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어느 시인(?)의 말입니다. 



그리고 계속 이어진 상황


" (J님) 의미 전달이 잘 안 된듯하니 제 글을 다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평생 단 한 권의 책만을 읽었다는 이가 있다. 걱정마시라, 설사 단 한 권 읽지 않아도 행복전선에 하등 문제될게 없으니까. 문제는커녕 앞에서 누누히 말한대로 안 읽으면 안 읽을수록 더 행복하고, 확신에차며 룰루랄라~ 마냥 삶이 즐거울 수 있다. 일상의 상식에 기댄 삶일수록 행복전선은 더욱 발치 가까이 있게 마련이니, 당신이 행복하고싶다면 결코 책 따위에 정신을 뺏기면 안 된다."

 이 글에서 '행복'이란 일상의 상식에 기댄 행복, 가령 출세해서 돈많이 벌고 건강하고 내 가족 탈 없이 건사하는 것만을 최상의 행복으로 여기는 것을 뜻합니다. 이런 식의 행복은 대개 TV 드라마나 우리네 일상 주변에서 흔히 통용되고 인정되는 것들이지요. 이에반해 책은 일상의 행복이 진짜 행복인가 되물어봅니다. 그리고 '발치'란 눈 앞의 일상을 뜻하기 때문에 자연, 일상의 행복은 책이 아닌 일상의 상식 속에 가까이 있다는 뜻이지요. 

 "내가 직접 확인해보지 않은 행복을 그대로 접수할 수 없으니 말이다. 남 말만 믿고 무임승차하는 것은 줏대없는 짓이니, 땀흘리지 않은 불로소득치고 실속 없는 것이 많은 법이니."

 '남 말'은 타인의 견해를 뜻합니다. 그렇다면 타인의 견해는 말도 있고 글도 될 수 있지요. 다음에 '무임승차'한다는 것은 자신이 직접 따져보거나 확인해보지도 않은채 그대로 따라하거나 액면대로 믿는 것을 말합니다. 대개 순진한 어린애들이 그렇지요? 줏대 없이 남이 하는 말을 덮어놓고 따라 믿는 거. 그러니까 일이든 지식이든, 나아가 행복까지도 땀흘리지 않고 공짜로 얻는 것일수록 가짜일 확률이 크고 믿을 수 없다는 뜻이지요.     

 님이 말씀하신 '진리'니 '지혜'는 무엇을 뜻하는지요? 제 글 속에는 그런 단어가 없습니다. 다만 제가 알기로는 설사 평생 노동으로 일관한 농부라해서 절로 진리, 지혜를 깨달을리 없고, 지구 상의 모든 책을 읽었다고 지혜를 깨우칠리 없으며, 평생 주방을 지킨 주부라해도 마찬가지지요.  그러니 농부도 농부 나름이고, 책 읽는 이도 읽는 이 나름이며 주부도 주부 나름이 아닐까싶습니다. 

 펌글은 님의 말씀대로, "다만 싸우려는 자마저 자본을 가지고 싸우거나 자본의 힘을 빌리는 싸움은 자본의 위력을 재긍정하는 일밖엔 되지 않" 기 때문에 옮겨온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가 자본을 벗어날 수없는 한 '재긍정'을 하지 않는다는 게 너무 힘겨운 노릇임은 저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


그리고 G님의 또다른 답글이 달렸다. (계속)


by 블랙스콜라 | 2009/05/04 18:15 | | 트랙백 | 덧글(0) |
한 문화모임에서의 토론 (우리는 '앎' 에 대해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가?)(1)
* 본 대화가 이루어진 것은 Wallflower 블로그 내에서 '박쥐' 평론에 관련된 상황이 이루어지기 전이다.
약간 다를 수 있는 상황이나 '상식이나 일상' 을 들어 반론하는 G님의 발화에서 Wallflower 블로그의
주인장께서 언급하신 '반지성주의' 의 실마리가 있지 않을까 하여 정리해 본다. 연달아 이어진 상황이
유사한 상념을 던져주면서 성찰을 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발단은 J님의 개인적인 생각을 밝힌 글이었다.



" (J님) 아름다운 당신

1.
젊은시절, 잠시 교회에 나갔을 때 일이다. 주일날 설교를 듣다보면, 어렵쇼,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아냐? 누가 볼새라 쥐죽은듯 설교를 듣던 기억이 난다. 불특정 다수일게 뻔하건만 도둑 제발저린다고, 내 스스로 그렇게 생각한 거다. 하긴 나만 그랬을까. 홍상수 영화를 볼 때도 그렇다. 등장인물들은 대개 자의식에 가득찬 3류 지식인들인데, 하나같이 여자꽁무니 쭐레쭐레 따라다니며 어떻게해볼까 궁리나 하는 위선적 속물들이다. 다름아닌 내가 바로 그렇기에 그렇다. 소설을 읽을 때, 혹은 어떤 글을 읽을 때도 종종 그런다.   

나는 간혹 감상적인 기분이 들면, '아름다운 당신' 이라고 제목을 붙인 후 글을 써나간다. 앞에서 목사 설교가 그랬듯이 불특정 다수를 지칭한 표현인데, 행여 읽는 이가 특정한 누구로 오해하지 않을까싶다.  

 
2. 우리가 기왕에 알고 있는 확신들, 혹은 이거다, 라고 믿었던 것들이 실은 착각에서 비롯되었거나 근거 없는 것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행복이고, 이것이 바로 정답이라고 말하지만 실은 아닐 수 있다는 것. 반복하거니와 '아름다운 당신'은 단지 순간의 기분에서 비롯된 말일수 있고, 특정한 누구일 수 있으며 불특정 다수일 수도 있다. 

 

3. 책을 읽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마음의 양식, 지식, 교양을 쌓기 위해서거나 취미삼아 읽을 때도 있다. 어떤 경우건, 지속적으로 읽다보면 진리는 결코 하나가 아님을, 내가 그동안 알고있던 것이 전부가 아녔음을, 내내 자신감에 차있던 사실이, 행복해 죽겠다고 여겼던 것들이 실은 말짱 꽝이었다는 것을. 결단코 사실이라고 믿었던 것이 가짜라는 것을, 그동안 내가 믿었던 것은 한낱 피상적이거나 전혀 근거가 없었다는 것도 알게 한다.

 그러므로 교양수필에나 나옴직한, 책은 많은 지식을 얻고, 교양을 쌓고, 삶이 행복해진다는 말은 전혀 근거가 없다. 실제는 매사를 의심케하고, 다시 확인케 하고, 되묻게 하니 행복한게 아니라 오히려 불행해질 수 있다. 뿐만인가.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뭔가를 많이 알아서 뿌듯한게 아니라 알아봐야할 것이 많아지고, 뭐가 문제인지 더욱 궁금해진다. 허기가 지고 회의적이 된다면 차라리 읽지 않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식자우환이랬다고, 차라리 모르는게 약일테니. 그러나 그럴수는 없다. 내가 직접 확인해보지 않은 행복을 그대로 접수할 수 없으니 말이다. 남 말만 믿고 무임승차하는 것은 줏대없는 짓이니, 땀흘리지 않은 불로소득치고 실속 없는 것이 많은 법이니.   

 

4. 평생 단 한 권의 책만을 읽었다는 이가 있다. 걱정마시라, 설사 단 한 권 읽지 않아도 행복전선에 하등 문제될게 없으니. 문제는커녕 앞에서 누누히 말한대로 안 읽으면 안 읽을수록 더 행복하고, 확신에차며 룰루랄라~ 마냥 삶이 즐거울 수 있다. 일상의 상식에 기댄 삶일수록 행복전선은 더욱 발치 가까이 있게 마련이니, 당신이 행복하고싶다면 결코 책 따위에 정신을 뺏기면 안 된다. 어쨋든 책을 손에 드는 순간 믿도끝도 없는 고뇌와 회의로 둘러싸일테니.

 

5. 어떤 책을 읽을 경우,  과거는 대충 뜻을 파악한 것만으로 다 이해했거니 했다. 요즘은 요지 파악은 그만두고 우선 책에 나오는 개념 하나라도 정확히 알아야겠다, 라고 생각한다. 글을 쓰다보면 이런 저런 개념어나 단어를 구사하기 마련인데, 지금 돌아보면 정확히 모르면서도 마구 남발한 경우가 허다했다. 가령 근대철학사에 자주 등장하는 정신이니 영혼, 실제, 주체, 초월자를 비롯해서 불가지론, 무의식, 구조, 타자, 포스트모더니즘,  이데올로기, 욕망, 탈주, 아비투스, 에피스테메 등 숱한 개념들을 정확한 뜻을 모른채 사용했던거다. 어디 이뿐일까.

 근자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책 속에 나오는 단어, 개념어를 비롯,  어떻게 하면 보다 투명하고 정확히 삶의 실상을 이해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나아가 어떤 진술이 과연 근거가 있는 것인지, 내가 생각했던 것들이 확실한 것인지, 남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고싶다. 그러기위해서는 우선 개념어들을 정확히 이해하고, 구사하는게 선결과제임을 뒤늦게 알게된 거다./ 계속 " 

그리고 G님의 답글이 달렸다.


" (G님) 검색을 통해 여기 카페를 알고, 듬성듬성이지만 그렇게 들락거린 게 한 달 쯤 되는 것 같습니다. 굳이 회원으로 가입할 필요성은 없어서 객처럼 오가다 궁금한 게 있어 여쭙고자 가입했습니다.

 <내가 직접 확인해보지 않은 행복을 그대로 접수할 수 없으니 말이다. 남 말만 믿고 무임승차하는 것은 줏대없는 짓이니, 땀흘리지 않은 불로소득치고 실속 없는 것이 많은 법이니.

평생 단 한 권의 책만을 읽었다는 이가 있다. 걱정마시라, 설사 단 한 권 읽지 않아도 행복전선에 하등 문제될게 없으니까. 문제는커녕 앞에서 누누히 말한대로 안 읽으면 안 읽을수록 더 행복하고, 확신에차며 룰루랄라~ 마냥 삶이 즐거울 수 있다. 일상의 상식에 기댄 삶일수록 행복전선은 더욱 발치 가까이 있게 마련이니, 당신이 행복하고싶다면 결코 책 따위에 정신을 뺏기면 안 된다.>

 앞에서 듬성듬성 오갔다고 말씀드렸지요. 거기다 실제 사람을 겪어본 것도 아니지요. 제가 본 건 어디까지나 글 뿐입니다. 그러니 제가 님 말씀에 의아해한 부분에도 약간의 오해가 있을 수 있고, 님 또한 다르지 않을 수도 있을 테지요. 가입 후 첫인사이면서 그다지 매끈거리는 얘기를 꺼내는 게 아니어서 이리 말이 길어집니다. 각설하고,

다시 인용한 님의 생각, 그것에 대한 좀더 친절한(?) 설명을 듣고 싶군요. 감각이란 게 일으키는 오류가 적지 않으니 느낌이란 걸 확고하게 신뢰한다는 건 참으로 우습습니다만, 님의 표현이 매우 거칠고 도도해 순간 당혹스러웠습니다.

 남이 한 말들이란 소문에 불과한 것인지요? 그래서 확인이란 건 꼭 책, 문서를 통한 것이어야 하는지요? 그렇다면 책은 남의 말이 아닌 건지요? 한 인간이 살아가며 겪는 경험과 과정 속에서 얻은 작은 지혜들로 찾아낸 행복은 '진정한' 것이 아닌 건지요? 그것마저도 어디선가 검증을 받아야 하는 것인지요? 그래야만 안심할 수 있는 행복인 건지요? 그것을 인증해주는 건 누구인지요? 무언가를 바라보는 시각은 시대마다 달라서 님께서 말한 고전에 대한 해석도 다양하지요? 그런 관점에서 다시 본다면 님의 말씀으로 다시 돌아갈 수도 있겠지요? '허기가 진다'는 말씀 말이지요. 님께서 쓴 말에는 더 심오하고 각별한 의미가 있고, 그게 채 다 드러나지 못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누누히 말한대로 안 읽으면 안 읽을수록 더 행복하고, 확신에차며 룰루랄라~ 마냥 삶이 즐거울 수 있다"는 말씀은 평생을 제 논밭만을 일구며 자연 속에서 늙어간 한 농부에겐 진리도 지혜도 없다는 듯 들립니다. 있어보니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지식인들이 왜 가끔 비판대에 오릅니까? 꼭 실천이 결여된 것만을 가지고 하는 게 아니지요. 책 읽고 비평하기도 바쁘지요. 밖에 나와 갖가지 사회운동 해가면서 언제 공부하겠습니까. 단지 책과 말속에서 그치고마는 화려함 내지 수려함 때문이지요. 올려놓으신 펌글에서 진중권 씨의 언변을 언어차력쇼로 표현한 이의 글을 읽고 그 명랑 혹은 발랄한 유머에 웃었습니다만, 그것만 지적 당해야 할 건 아니지요. 지금 우리가 서있는 자리에서 자본이란 건 어찌할래야 어찌해볼 수 없는 가장 큰 틀이지 않습니까? 거기 바깥은 없을 것도 같지요. 어디의 '바깥' 이렇게 표현하는 건 다분히 선택된 관념적인 어휘가 아닐런지요? 자본이 존재치 않는 어떤 판타지적 세계가 아니라 자본계 안에서 자본이 위시하지 못하게, 그것을 무시함으로서 무력해질 수 있도록 만드는 어떤 내부적 힘, 연대적 공동체 관계가 아닐런지요? 결국 자본의 상징적 질서 안에서 싸운다는 것이지요. 책 썼으면 책 선전하러 나올 수도 있는 것이지요. 자본에 아부하는 자세로만 보는 것도 유연한 시선은 아닌 듯 하고요, 다만 싸우려는 자마저 자본을 가지고 싸우거나 자본의 힘을 빌리는 싸움은 자본의 위력을 재긍정하는 일밖엔 되지 않는 것이지요. 아, 어쩌다 진중권 씨로 빠져 자본 얘기까지 나왔습니까? 다시 각설하고,

 지식인 얘길하다 삼천포로 빠졌군요. 그러니까 제 생각은 -저 자신도 그저 '제 생각만'을 말할 수밖에 없군요-  지식인들이 그들이 알고 있는 걸 행동에 옮기지 않는 것이 문제(?)의 다가 아니라, 그들이 아는 것을 힘 또는 권력으로써 과시할 때 그들이 평범한 일상인들로부터 비웃음을 받는 거라 여깁니다. 책, 더구나 님께서 지속해서 보고자 하고 함께 읽고자 하시는 책들은 두 말할 것도 없이 훌륭한 것들이지요. 님 글에 제 심리가 불편하게 작동한 것은 책이 아니라, 그 책들을 대하지 않거나 모르는 일상인들에 대한 무시가 담겨 있는 듯하여 그랬지요.

저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는 사람으로써, 그렇잖아도 하루를 어찌 지나는 줄도 모르게 바삐 사는 직장인으로써, 그렇게 훌쩍 지나버리는 시간들을 붙잡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주부로써, 왜 모두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로 가끔은 침울해지는 엄마로써, 발끈한 것이지요. 여기 별볼 것 없고 아는 것 없고 하찮게 일상을 사는 우리도 고민합니다! 하고요.

 어떤지요. 행복은 하나가 아니던데요. 그리고 한 가지 행복도 경우와 사건에 따라 색깔을 달리하던데요. 일상도 달리보면 다채롭습니다. 책만이 진리를 말하진 않지요. 예수께서도 오죽하면 글자 하나 남기지 않으셨을까요. 나의 말들은 너희 속에서 살아 움직여야 한다.... 그런 뜻이지 않을까요? 진리는 굳어지면 독입니다. 그래 님께서도 여러 관점의 책들을 섭렵하고 계실 거라고, 그렇게도 여깁니다만 그 진리가 '좌판에서 오래 살아 남은' 책을 통한 것이란 데 찍으신 방점이 약간 불편했음을 말씀드립니다. 하루를 살고 가는 하루살이에게도 나름의 의미가 있고 진리 혹은 교훈이 있어야지요. 그것들보다 무궁히 오랜 시간 속에서 서로를 겪어내는 우리 인간에겐 말이죠. 한 달을 못 넘기는 책을 통해서도 우린 배울 수 있습니다. '배운다' 는 것에 특이하고 독특한 차원의 것만 붙이지만 않는다면, '배움'이 '지식'과 동의어가 아닌 것을 안다면요.

고뇌하는 너의 가슴속에만 진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모든 마당과 모든 숲 모든 집 속에서 그리고 모든 사람들 속에서 진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목적지에서 모든 여행길에서 모든 순례길에서 진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길에서 모든 철학에서 모든 단체에서 진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모든 행동에서 모든 동기에서 모든 생각과 감정에서 그리고 모든 말들 속에서 진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마음속의 광명뿐 아니라 세상의 빛줄기 속에서도 진리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온갖 색깔과 어둠조차 궁극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

진정으로 진리를 본다면 진정으로 사랑하기 원한다면 그리고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광활한 우주의 어느 구석에서도 진리를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어느 시인(?)의 말입니다. 



그리고 계속 이어진 상황


" (J님) 의미 전달이 잘 안 된듯하니 제 글을 다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평생 단 한 권의 책만을 읽었다는 이가 있다. 걱정마시라, 설사 단 한 권 읽지 않아도 행복전선에 하등 문제될게 없으니까. 문제는커녕 앞에서 누누히 말한대로 안 읽으면 안 읽을수록 더 행복하고, 확신에차며 룰루랄라~ 마냥 삶이 즐거울 수 있다. 일상의 상식에 기댄 삶일수록 행복전선은 더욱 발치 가까이 있게 마련이니, 당신이 행복하고싶다면 결코 책 따위에 정신을 뺏기면 안 된다."

 이 글에서 '행복'이란 일상의 상식에 기댄 행복, 가령 출세해서 돈많이 벌고 건강하고 내 가족 탈 없이 건사하는 것만을 최상의 행복으로 여기는 것을 뜻합니다. 이런 식의 행복은 대개 TV 드라마나 우리네 일상 주변에서 흔히 통용되고 인정되는 것들이지요. 이에반해 책은 일상의 행복이 진짜 행복인가 되물어봅니다. 그리고 '발치'란 눈 앞의 일상을 뜻하기 때문에 자연, 일상의 행복은 책이 아닌 일상의 상식 속에 가까이 있다는 뜻이지요. 

 "내가 직접 확인해보지 않은 행복을 그대로 접수할 수 없으니 말이다. 남 말만 믿고 무임승차하는 것은 줏대없는 짓이니, 땀흘리지 않은 불로소득치고 실속 없는 것이 많은 법이니."

 '남 말'은 타인의 견해를 뜻합니다. 그렇다면 타인의 견해는 말도 있고 글도 될 수 있지요. 다음에 '무임승차'한다는 것은 자신이 직접 따져보거나 확인해보지도 않은채 그대로 따라하거나 액면대로 믿는 것을 말합니다. 대개 순진한 어린애들이 그렇지요? 줏대 없이 남이 하는 말을 덮어놓고 따라 믿는 거. 그러니까 일이든 지식이든, 나아가 행복까지도 땀흘리지 않고 공짜로 얻는 것일수록 가짜일 확률이 크고 믿을 수 없다는 뜻이지요.     

 님이 말씀하신 '진리'니 '지혜'는 무엇을 뜻하는지요? 제 글 속에는 그런 단어가 없습니다. 다만 제가 알기로는 설사 평생 노동으로 일관한 농부라해서 절로 진리, 지혜를 깨달을리 없고, 지구 상의 모든 책을 읽었다고 지혜를 깨우칠리 없으며, 평생 주방을 지킨 주부라해도 마찬가지지요.  그러니 농부도 농부 나름이고, 책 읽는 이도 읽는 이 나름이며 주부도 주부 나름이 아닐까싶습니다. 

 펌글은 님의 말씀대로, "다만 싸우려는 자마저 자본을 가지고 싸우거나 자본의 힘을 빌리는 싸움은 자본의 위력을 재긍정하는 일밖엔 되지 않" 기 때문에 옮겨온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가 자본을 벗어날 수없는 한 '재긍정'을 하지 않는다는 게 너무 힘겨운 노릇임은 저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


그리고 G님의 또다른 답글이 달렸다. (계속)
by 블랙스콜라 | 2009/05/04 18:11 | | 트랙백 | 덧글(0) |
다시 시작합니다
아무래도 무게를 두어야할 글을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쓸 이유가 있을 듯 하여

이 곳을 독서 후의 피드백이나 여러가지 학술적인 접근을 할 필요성이 있을 경우의
글을 위해 다시 활성화합니다.

이런저런 좋은 얘기를 나누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글을 쓸 저도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고 방문해주시는 분들과의
진중한 얘기를 나누는 영광된 기회도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블랙 스콜라   081115

P.S. http://triggaeffect.tistory.com/  는 놀이공원 내지 만남의 장소가 될 예정이니
오셔서 계속 즐겨주시길...
by 블랙스콜라 | 2008/11/15 19:00 | 트랙백 | 덧글(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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