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론 생산자를 지향하는 90년대 흑인음악 중독자
by 블랙스콜라
(졸업맞이 단편) 벚꽃 흩날리던 시간(2)

  세현은 좀 더 유려한 손놀림을 시도하고 있었다. 아이의 유완한 감촉의 구석구석을 살피는 중이었던 것이다. 세현의 손이 아이의 옷을 비집고 들어가 피부가 주는 감촉을 훑고 있었다. 소년이 소시지의 흔적을 막대에서 훑었듯이 세현은 자신의 감각세포와 마찰하는 겁에 질린 연약함을 철저하게 즐겼다. 이윽고 세현의 손이 소년의 하복부를 향해 미끄러져 갔다.


  “뭐하는 거야!”


  금속성의 고함이 놀이터에 울려퍼졌다. 분노로 얼굴이 일그러진 한 여성이 세현에게 불이 붙은 듯한 눈빛을 쏘고 있었다. 그녀는 재빠르게 소년을 세현에게서 떼어냈다. 이를 가는 소리가 괴기할 정도로 섬뜩하게 세현의 귓가에서 울렸다. 물리적인 힘의 차이가 없었다면 그녀는 세현을 가리가리 찢어놓았을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당신 뭐야?”


  그녀의 목소리가 한층 더 높아졌다. 그녀의 얼굴을 향해 고개를 돌린 그는 갑자기 무력함을 느꼈다. 이번에는 소년의 경우처럼 침입을 할 수 있는 다름의 세계가 아니었다. 분명히 아니다. 이상하게도 세현의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대항하려는 의지를 좌절시키는 미지의 힘을 가진 주인과의 만남이었다. 분을 이기지 못하는 듯 그녀가 세현의 뺨을 향해 손을 날리려 했다. 


  “어...엄마….”


  소년이 여성의 치맛자락을 붙잡았다. 안도감인지 공포의 여진 때문인지 소년의 눈물자국은 굵어져 있었다. 소년의 잔루(殘淚)는 긴장의 첨단에 있던 순간에 잠시 정적을 가져왔다. 그녀는 결국 손을 내렸다. 하지만 식지 않은 분노는 그녀의 입안에서 타액으로 변해 세현의 얼굴을 향해 뿌려졌다.


  “개 같은 새끼”


  그녀는 소년의 손을 잡고 돌아섰다. 멀어져가는 모자(母子)의 대화가 바람에 실려 세현의 귓가에 흩날렸다.


  “세현이 너! 엄마가 모르는 사람 따라가면 된다고 했어? 안 된다고 했어?”


  아이를 꾸짖는 여성의 노한 음성은 봄날의 하늘로 퍼져나갔다. 이상했다. 분명히 이 놀이터 근처에는 벚꽃 나무가 없었다. 한 차례의 바람이 다시 불어왔고, 세현은 벚꽃 무더기가 자신의 주위에서 흩어지는 것을 보았다. 훈풍이었지만 벚꽃의 향기를 씻어버리기에 충분한 바람이었는데도 꽃냄새는 세현의 코를 강하게 자극하며 현기증이 나게 했다. 벚꽃 향기는 점점 역한 느낌의 다른 냄새로 서서히 변해갔다.


  세현은 스르르 눈을 떴다. 희뿌옇던 시야가 점점 제 모습을 찾으면서 주위의 모습이 형태를 찾아갔다. 세현의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군데군데 벗겨진 부분이 있는 페인트칠을 한 벽이었다. 구석에 곰팡이가 핀 낡고 오염된 나무 바닥도 눈에 들어왔다. 시큰거리는 통증이 오른손에서 전해져왔다. 이미 많은 피가 그의 동맥에서 쏟아져 나왔다. 어지러움을 느끼면서 세현은 손목에 박혀있는 유리조각을 빼냈다. 유리가 박혀있던 구멍에서 피가 한층 더 샘솟았다. 세현의 옆에 놓여진 알이 깨지고 구멍이 난 채로 버려져 있는 안경에서 나온 파편이었다. 좁은 방 안에서 세현은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던 중인지 깨달았다. 그리고는 희미하게 웃었다. 힘이 빠져가는 왼손을 들어 팔목에서 나오는 피를 손가락에 묻혔다. 세현은 바닥에 하나하나 글자를 써나가기 시작했다.


  ‘C...l...i..c...'


  나무 바닥에 ‘Cliche’ 라는 글자가 남았다. 세현은 무언가에서 놓여진 느낌이었다. 몽롱해지는 정신 속에서 세현은 많은 사람이 택하는 식상한 탈출구의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며칠 후, 교정직 공무원으로 26년을 산 김 교도관은 께름칙한 수감자의 사형집행을 위해 이동하는 중이었다. 며칠 전 독방에서 자살을 시도한 녀석으로 교도관 사이에서도 ‘미친 꼴통’이라는 이름이 좀 더 녀석을 식별하는데 빠른 존재였다. 3-4살 정도의 아이들만 골라 추행하였고 몇몇 아이는 저항이 심해 목을 졸라 살해를 하였다는 점도 추가로 밝혀지면서 한동안 세간을 들썩이게 했던 녀석이었다. 수감 시설 내에도 소문이 돌아 동료 수감자들의 주먹세례가 하루를 거르지 않아서 임시방편으로 독방으로 옮겨 놓은 상태였다. 사실 김 교도관의 경험에 비춰보더라도 수감자 간의 폭력, 그것도 한 명에게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구실이 필요한 때에 적절한 명분이 주어진 경우였다. ‘미친 꼴통’ 2098호가 아주 잘 맞아떨어지는 예였다. 이유 없는 언짢음을 적당한 도덕의 심판에 입각해 풀 수 있는 아주 좋은 대상이었다. 김 교도관의 입장에서는 결국 똑같이 죄를 지은 놈들끼리 아주 웃기는 짓을 하고 있는 것이었지만 2098호에게 그다지 동정이 가지는 않았다. 저지른 죄도 죄지만 한창 자신의 월급에서 과자 값을 까먹고 있는 손주가 떠올라서 더욱 그랬다. 어제는 놀이터에서 손주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 터였다. 2098호는 주로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꾀어내어 범행을 저질렀다고 했다. 김 교도관은 잠시 몸서리를 쳤다.


  ‘쳐 죽일 놈’


  김 교도관은 수감시설 내 간호시설로 이동 중이었다. 간호시설로 이송되던 그 당시 2098호는 아침을 먹은 후 실외활동을 하고 자기의 감방 안에 있었다. 점심 배식 시간이 되었는데도 소집에 응하지 않아 김 교도관이 직접 그를 호출하러 감방 문을 열었을 때 그는 마룻바닥을 피로 흥건하게 해놓고 있었다. 급하게 응급처치를 한 결과 사망을 막을 수 있었고, 교도소 내 간호시설에서 상태가 호전되기를 기다렸다가 사형집행을 하는 오늘에 이른 것이었다. 자살 시도 이후 충분한 회복 기간이 필요했지만, 피해 부모들의 끝이 없는 탄원이 있었고 죄질이 매우 나빴기에 2098호가 걸을 정도로 회복이 되었다는 의사의 소견이 나온 후 바로 재집행 일자가 결정되었다.


  김 교도관은 간호시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2098호는 멍하니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일어나라. 집행시간이다.”


  느릿느릿 죄수가 일어났다. 김 교도관은 묵묵히 죄수의 손에 밧줄을 묶었다. 초점을 잃은 죄수의 눈이 더욱 김 교도관의 심사를 뒤틀리게 했다.


  ‘도대체 이 새끼는….’


  죽음이 임박한 시간의 사형수는 항변의 의사를 눈 안에 가득 담고 있거나 참회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무감(無感). 그 외의 어떠한 것도 죄수의 눈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김 교도관은 2098호가 자신이 사는 동네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장소에서 검거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할아부지’ 를 찾는 자신의 손주의 얼굴도 슬며시 떠올랐다. 자신의 업무라 해도 김 교도관은 곧 이런 녀석을 죽였다는 죄책감까지 떠안아야 한다. 죽음 앞의 체념이라기보다는 원하던 놀이를 마음껏 한 후 흥미를 잃고 허무해진 듯한 이 죄수의 눈빛은 가끔 김 교도관이 느끼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회의감을 짙게 했다.


  사형 집행장으로 가는 복도를 따라 세현은 교도관을 동행한 채 걷고 있었다. 창밖으로 벚꽃나무가 꽃잎을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그 나무 밑에서 한 소년이 말을 타고 맴돌고 있었다. 한 남자가 소년에게 다가섰고, 소년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세현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가슴이 뒤틀리는 감정을 느꼈다.


  김 교도관은 갑자기 복도에 우뚝 서서 창밖을 응시하며 움직이지 않는 2098호를 바라봤다. 그가 바라보는 방향에는 관리가 소홀하여 말라죽은 고목나무가 서있었다. 교도소장의 명령으로 조만간 뽑혀나갈 나무였다. 창밖을 응시하던 2098호의 얼굴에 괴로운 감정이 떠올랐다. 김 교도관은 생명이 다한 나무를 바라보며 자신의 죽음에 대해 이제야 실감하는 모양이라는 생각을 했다. 더는 지체할 수 없었기에 김 교도관은 2098호의 옆구리를 툭 쳤다.


  “뭐해?”


  번뇌의 표정이 가득한 채 세현은 다시 집행장을 향해 움직였다. 사건을 담당한 검사와 교도소 내 일요 예배를 주관하던 근처 교회의 목사, 교도소장이 세현의 사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세현에게 담배가 주어졌다. 세현은 흡연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세상에서 최후로 맛보는 기호식품이라는 생각에 일단 입에 물었다. 처음이자 마지막 흡연은 심한 기침을 동반했지만 마지막으로 해볼 수 있는 ‘행위’ 로서 그리 나쁘지 않은 것이었다. 머리가 띵한 느낌에 세현은 앞에서 기도를 하는 목사의 얼굴이 약간 흐릿하게 보였다. 심한 기침 끝에 눈물이 고인 탓이었다. 눈물을 닦아낸 세현은 목사 가운 사이에서 튀어나온 앳된 소년의 얼굴을 보았다. 세현의 얼굴을 향해 짓궂은 미소를 흘리던 소년은 올가미가 목에 걸린 목마를 목사의 가운 사이에서 슬슬 꺼냈다. 소년은 가로누운 플라스틱 말을 이끌고 이곳저곳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세현은 비명이 목까지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세현의 얼굴에 검은 보자기가 씌워졌다. 세현의 비명은 보자기 안으로 싸여져 들어갔다. 어둡다. 시야가 가린 후에 드는 느낌은 후회감도 억울함도 아닌 빛이 사라진 후의 무용(無用)해진 시각으로 인한 본능적인 공포였다. 세현은 그제서야 몸부림을 쳤다.


  김 교도관은 마지막 발악을 하는 2098호의 모습을 지켜봤다. 그가 자살을 시도했을 때 죽게 내버려두는 것이 옳았을 것이었는지 찬찬히 생각해봤다. 사형은 분명히 단죄(斷罪)이다. 편한 죽음이 2098호에게 보장되어 있지는 않은 것이었다. 얼마 전 야간당직을 서던 중 보았던 TV에서 개그맨이 ‘두 번 죽이는 일이라는’ 이라 하던 유행어가 떠올랐다. 심심해서 틀어 놓았던 TV에서 나왔던 말이 김 교도관의 머릿속에서 갑자기 떠올라 죽음에 임박한 한 인간의 상황을 조롱하고 있었다. 죽으려던 인간을 살려서 다시 죽이는 순간이었다. 단죄이든 복수이든 썩 유쾌한 상황은 아니었다. 물론 자신의 아이가 유린당한 채 죽음을 당한 참상을 겪은 부모의 입장을 이해하는 쪽에 자신의 상황이 가까웠다. 어쨌든 죽어가는 인간을 긴 세월 반복하여 지켜본다는 것은 직업으로써 그리 보람을 가질만한 일이 아니다. 선악의 구분을 떠나 인간의 죽음이 뿜어대는 음울한 기운에 노출되는 것은 유독가스로 가득 찬 공장에서 일하는 거나 다를 바 없는 기분이었다.


  세현은 시야를 가린 보자기 속의 어둠 속에서 자신의 다리를 향해 부딪치는 무언가를 느꼈다. 그리고 그 물체에서 누군가 자신의 몸을 향해 기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 누군가는 자신의 목에 팔을 둘렀다. 목을 감싼 팔의 느낌을 세현은 생생하게 느끼고 있었다. 세현은 속삭이는 목소리를 들었다.


  “아저찌, 괜찮아. 나 업어줘.”


  목을 감싼 팔이 점점 억세게 세현의 목을 조여왔다. 세현은 자신의 시야가 어둠에서 환한 빛으로 변하는 것을 보았다. 환하게, 눈이 멀 정도로 환하게 발하는 빛은 산산이 흩어져 갑자기 화려하게 날리는 벚꽃 무더기로 변했다. 세현은 벚꽃 향을 맡을 수 있었다. 그는 환상이 자아내는 황홀경에 탄성을 삼켰다. 세현은 크게 미소를 지었다.


  ‘덜컹’


  김 교도관은 숨진 사형수의 목에서 올가미를 벗겨냈다. 이어서 보자기를 벗겨낸 김 교도관은 2098호에게 잠시나마 들었던 동정심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역겨운 새끼’


  혀를 빼문 시체의 눈은 만족감을 가득 담은 채 웃고 있었다.




<終>


by 블랙스콜라 | 2008/01/03 23:42 | 습작과 단편 | 트랙백 | 덧글(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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