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Live Club "브라더후드”
97-8년경 외국의 한 ‘문화’가 국내에 서서히 스며들고 있었다. 서울 강남의 아이들에게 나이 드신 분들이 “똥싼 바지”라고 미간에 주름을 지으시며, 말씀하시는 “배기팬츠(힙합 바지)”를 입는 것이 유행이었다. 그리고 그 바지에 어울리는 음악 또한 서서히 젊은 층의 음악 감상 리스트를 검은 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야 역시 우탱클랜(*주1)이 죽인다. 이 메쏘드맨(*주2) 말야. 진짜 맛깔나게 뱉어내지 않냐?”
“뭐 내 삘에는 Bone Thugs-N-Harmony(*주3)가 맞는 거 같아. 졸라 빠른 것이 마음에 들어 낄낄”
홍대의 한 편의점에서 라면과 김밥으로 허기를 때우고 있던 Rapper 제타(본명: 이우형)는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머리에 힘을 많이 주고 헐렁한 힙합바지를 입은 채 삐딱한 자세로 얘기를 나누고 있는 두 아이들에게 눈이 갔다.
‘호, 우탱클랜과 본떡이라, 그래도 많이 듣는 애들이네….’
사실 뭐 자신이 많이 듣네 뭐네 라고 판단할 것도 없다고 순간 제타는 생각했다. 그럴 것이 아직은 저변이 그렇게 넓지 않은 문화였기에, 그렇게 자부심있게 누군가를 판단하기도 어색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저렇게 들어주는 애들은 고맙지. 빌린 것만 아니면 쥬라식 파이브(*주4)도 같이 듣고 싶다만.’
정말 건너 건너서 알게 된 친구의 미국 친구에게서 어려운 경로로 빌려 듣게 된 쥬라식 파이브라는 팀의 앨범이 요즘 제타의 마음을 끌었다. 사실 EP(*주5)라는 개념의 ‘힙합 음악에 관심 없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곡의 수가 너무 적어서 매력이 없을 앨범’ 이었지만, 제타에게는 이게 왜 좋은지를 당당히 밝힐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이 추구하고 있는 것에 많이 부합하는 면이 있었다.
‘각자가 좋아하는 분야를 열심히 파고든 고수들이 장점만을 담은 결과물을 낸 것이지. 나도 그런 작업에서 결과물을 내고 싶다.’
제타에게는 아직 없고, 이 쥬라식 파이브의 앨범에 있는 것은 DJ(*주6)의 섬세한 테크닉이었다. 이 쥬라식 파이브의 앨범은 DJ가 깔아 놓은 멍석에 MC(*주7)들이 제대로 놀며 재주를 부린 이를테면 ‘성공한 마당놀이’인 것이다. 그리고 이 마당놀이는 제타를 포함한 많은 관객의 마음을 흥겨움으로 가득하게 하는데 성공했다. 제타로서는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아차, 잘못하면 늦겠다.’
제타는 클럽 “브라더후드”의 공연진 미팅 시간이 얼마 안 남은 것을 알아채고, 서둘러 편의점을 나섰다.
“어, 형 왔어요? 안녕하셨어요?”
클럽 내에서 솔로 랩퍼로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져 있는 제이디(Jay-D, 본명: 김준동)가 제타를 알아보고 인사를 했다. 제이디와는 현재 같이 녹음할 곡을 정해놓고, 자주 만남을 갖는 편이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다른 멤버들을 기다리다가 문득 제이디가 질문을 던졌다.
“아, 형 근데 형 랩퍼명(랩퍼로서의 이름)이요. 전에 설명해주셨던 것 같은데, 어떻게 하다가 쓰게 된 거 랬죠?”
“뭐 전공이 전공이다 보니 제어열핵반응장치(*주8)의 약자가 우연히 ZETA 더라고, 그리고 그리스 자모 있잖냐. 알파, 베타 하는 그거, 그리스 자모로 여섯 번째가 이 제타야. 농구에서 식스맨이 참 멋있잖아. 힙합음악에 있어서도 식스맨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는 바람이지. 근데 진짜 솔직히 얘기하자면 내가 건담 애니메이션 중에서 제타건담을 제일 재미있게 봤어. 하하”
제타는 현재 물리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었다. 제이디는 제타의 이름 해설이 결국 애니메이션으로 맺어지자 재미있었다.
“준동이, 너는?”
“아, 그냥 제 이름 약자를 좀 폼나게 쓰고 싶었어요.”
“그랬구만, 그나저나 다들 올 때가 된 것 같은데.”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아닌게 아니라 한명씩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서 이어진 회합은 이런저런 공연 계획에 대한 의견들이 오고 갔다. 어느 정도 얘기가 진행되자 세부적인 공연에 관계된 내용들이 결정되고, 회의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사적인 얘기를 하는 분위기로 옮겨갔다. 그들의 주제는 매번 비슷했는데, 대중의 관심사와는 거리가 있는 매니아적인 특성이 강한 음악을 하는 것에 대한 비애나 그러한 음악이 용인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들의 얘기는 그들의 경험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으로 절절함이 있었다.
“어제는 홍대놀이터 부근에서 스피커 가져다놓고 게릴라식으로 공연을 했거든. 근데 사람들이 쳐다보는 거야. 뭐 눈빛에서 ‘그게 뭐냐? 쓸데없이 시끄럽다’라는 마음이 읽히는데 참 착잡하더라.”
“사실 이런 거 저런 거 생각하면 혼자 좋아하고 혼자 들으면 되거든. 근데 맨날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도 없고, 일단 정서상으로 거리가 있는 본토 것만 들을 수는 없잖아. 우리가 자신의 마음이나 생각을 자유롭게 음악에 담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라 시간을 두고 계속 무엇인가를 해나가면서 변화를 시켜야 된다고 생각해.”
“솔직히 랩이라는 개념이 잘못 잡혀 있는 것이 제일 안타까운 것 같아. 물론 랩의 특성상 가요나 여타 노래에서 양념 역할을 하는 거야 그나마 랩이 알려지기는 하는 거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힙합이라는 거 자체의 부분으로서의 랩은 이게 또 대중들에게는 지루한 거지. 어제는 아는 친구에게 나스(*주9) 1집을 들려줬거든. 결국 멜로디가 약하다고, 곡 자체가 그저 자기가 랩을 잘 한다고 자랑하는 것 뿐이라고 자기 취향은 아니라고 하더라. 난 이게 어느 정도는 지금 현재 대중이 이 힙합음악이라는 것으로서의 랩을 바라보는 시각이라고 생각해.”
“양념으로 들어가는 랩은 좋다고 느끼는 것 같은데 랩이 전부를 차지하는 곡은 꺼리는 거지. 도구로써 쓰일 뿐, 원래 랩이 생겨났던 처음 모습에서 많이 왜곡되었다고 생각해. 뭐 관심없는 사람들을 탓하기 보다는 랩의 재미와 본래의 모습이 가요에서 소모되고 있는 랩의 이미지를 극복할 만큼 우리가 지금 하는 것에 의지를 가지고 해나가는 것이 그나마 우리가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그 점은 그런 것 같아. 일단 알려나간다는 것에 방점을 찍고 수준이 높은 가사와 음악을 만들어내는 거야. 뭐 좋아한다는 것을 하고 있다는 거 자체가 즐거운 것이 아닐까? 무엇인가를 알고 그 것을 해나가는데 자부심 정도는 가지고 흔들리지 말아야겠어. 어찌 보면 우리가 후에 선구자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
설교를 하며 가르치기 보다는 이것이 왜 좋은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에서 얘기는 정리가 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 이렇게 자신들이 생각하는 ‘랩’에 대해 고민하고 행동하는 것이 그들이 그들의 젊음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어나가는 방법인 것이다.
“뭐 이쯤 하고 밥이나 먹으러 가죠.”
“간단하게 술이나 하면서 먹을 수 있는 곳으로 갈까?”
“암튼 형우형은 진짜 술 좋아한다니까, 알콜 중독 아니예요?”
“허허 풍류에는 술이 꼭 있어야하는 법이야. 랩을 하는 이태백(*주10)도 괜찮지 않냐?
동양문화와 서양문화의 절묘한 만남. 괜찮지 않아? 껄껄”
“자자 이동합시다. 이동”
며칠 후 홍대 라이브 클럽 ‘브라더후드’
한참 리허설 중인 듯 클럽 밖에서도 쿵짝거리는 음악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클럽이 설립된 초창기에는 락그룹들의 공연도 있고, 인디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면서 명성을 쌓아가고 있었다. 현재는 ‘언더그라운드 힙합(*주11)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곳’ 으로서 그 이름을 알려가고 있었다. 공연 자체도 힙합만으로 재편되었다.
“와 티켓이 10장이나 팔렸다.”
평소에 조용하고 침착한 성격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 제타였지만, 오늘은 마치 가지고 싶던 3단 변신 로봇을 선물로 받은 아이처럼 기뻐했다. 제타의 그룹 “적토마”와 제이디의 공연이 있는데, 관객이 10명 정도 온 것이다. 점점 관객 수가 늘어나는 추세기는 했지만 오늘이 그동안 “적토마”의 공연에서 제일 유료관객이 많은 날인 것이다. 제타에게는 상당히 기운이 나는 일이었다.
제이디의 솔로 공연이 끝나고, 적토마의 공연이 진행되었다. 그래도 랩이 전부를 차지하는 음악에 공감하고, 또한 그 것이 한글로 된 가사로 전개되는 것의 의미를 알아주는 관객들이라 호응이 좋은 편이었다. 제이디와 함께 하는 곡을 마지막 곡으로 하기 전에 제타는 짧은 멘트를 했다.
“이렇게 찾아와 주셔서 일단 정말 감사합니다. 힙합음악이라는 것이 아직은 그렇게 공감대가 큰 음악인 것은 아닌 것 같네요. 하지만 이 힙합음악 속의 랩의 장점은 지금 우리가 고민하고 있고, 잘 되길 바라는 일에 대해 얘기해 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는 거죠. 특히나 음악에 그 것을 풀어낼 수 있는 흥겨운 대화인 셈이죠. 저희는 우리의 정서와 우리의 생각을 우리의 말로 풀어낼 수 있어서 정말 기쁩니다. 여러분도 같이 즐겨주세요.”
제이디는 무대의 옆에서 제타의 멘트를 들으며, 정말 제타의 진솔함이 묻어나오는 멘트라고 생각했다. 자신을 위한 마이크를 하나 더 챙기며, 제이디는 제타의 옆에 섰다. 마지막 곡은 적토마에서 제타와 솔로 제이디의 듀엣곡이었다. “홍대유람”이라는 그 들의 곡의 전주가 시작되었다.
(*주12) ♬ 이 곳은 문화를 친구삼아 걷는 홍대의 거리
아직 이 곳에는 힙합의 향기는 적지
연인과 손을 잡고 듣는 가요보다는
자유를 상징하는 음악 바로 힙합을
우리말로 랩을 하는 나의 자긍심
하지만 우리 주위에서는 그저 귀를 닫으니
타협의 여지 없는 고독한 이 길이
우리가 유랑하는 홍대의 슬픈 여행길
내 이름 랩퍼 제타 내가 올라탄 적토마
함께 하는 제이디 나의 랩은 시이지
홍대의 길거리를 걸으면서 생각해
드럼소리 가득한 이 거리를 꿈꾸네
너와 나 힙합으로 하나됨을 꿈꾸네
내 손을 잡아 이 소리를 마음에 담아
하나의 울림으로 퍼져가는 힙합을 봐라
제타와 제이디의 힙합 홍대유람기♬
(제타&제이디 1998 “홍대유람” 중에서)
제타와 제이디가 주고 받으면서 공연한 마지막 곡이 관객들의 박수 속에 끝났다. 아직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진행되는 그들의 힙합에 대한 사랑은 아니다. 하지만 공연을 마치고 내려오면서 느끼는 상쾌함은 언제나 그들에게 기쁨이었다.
‘우리는 정말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있어.’
“형, 내일 거리 공연도 기대되요.”
내일은 압구정의 한 백화점 앞에서 공연을 한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바로 현장에서 같이 호흡한다는 매력이 있는 거리공연이다.
“어 그래, 호응 좋았으면 좋겠다. 정말 수고 많았어.”
그로부터 몇 년 후, 지방에서 세 명의 사람들이 ‘브라더후드’를 찾았다. “한국 힙합의 성지”로 명성을 날리던 라이브 클럽 ‘브라더후드’ 는 이제 BH 프로덕션이라는 소속 뮤지션 들의 앨범을 발매하는 레이블(음반회사)로 거듭나면서 마지막 라이브 공연을 열고 있었다.
“아…. 형진이 형, 들어갈 수가 없데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지방에서 올라왔다고, 꼭 보고 싶다고 얘기해 봐.”
재신은 계속 물어봤으나, 입구를 지키고 있던 관계자는 안타깝지만 자신도 나와 있어야할 정도로 사람이 너무 꽉 찼다고 얘기했다. 세 사람은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아까 잠깐 제이디도 왔다 갔다한 것 같아요.”
현준이 못내 아쉬워하며 말문을 열었다.
“아…. 마지막이라고 해서 무리해서 올라왔는데, 진짜 많이 아쉽네.”
“그러게 말이다. 기차로만 3시간이 넘게 왔는데. 쩝”
“뭐 이렇게 온 것, 다른 데라도 한 번 가보죠.”
“재신이 형 진짜 아깝네요. 제타 공연 한번 보고 싶었는데.”
지방의 열혈청년들을 불러낼 정도로 라이브 클럽 ‘브라더후드’는 선 굵은 흔적을 남기고 클럽으로서의 역사를 마감하고 물러났다. 하지만 이미 브라더후드만이 유일한 힙합클럽이 아니었으니, 많은 수의 클럽들이 새로 생겨나 라이브로 펼쳐지는 힙합음악의 매력을 점점 늘어나는 힙합팬에게 제공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정말 쉽게 전설을 얘기하고 또한 한동안 전설로 추앙하던 것을 빨리도 잊는다. 하지만 ‘브라더후드’ 라는 이름은 그 안에 존재했던 수많은 열정과 땀을 연료로 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계속 타오를 것이다.
‘라이브 클럽 브라더후드, 이 곳은 좋아하는 것을 열정을 가지고 할 줄 아는 사람들의
공간입니다….’
공연 홍보를 위해 배포된 팜플렛에 새겨진 이 말이 오늘따라 홍대 거리에 소리 없이 크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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