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론 생산자를 지향하는 90년대 흑인음악 중독자
by 블랙스콜라
오빠부대를 이해했다
싸움


어떠한 일이나 사물의 근본을 접할 때 '시금석' 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세상을 읽는 법에도 분명히 그러한 '시금석' 의 역할을 하는 '시각' 과 '분석' 이 존재하는 법이다.
가장 최근의 글을 빌려온 위 링크의 "수줍은 이들을 위한 잡담" 을 하고 계신
문화평론가 이택광 교수님의 근래 활동과 블로그의 주옥 같은 분석의 문장이 적어도
(하지만 관심 분야가 생기면 약간 'Internet Heavy User'의 하이드씨가 발광을 하고 튀어나오는
내 입장에서 볼 때 넷 상과 공식 언론 매체에서 정말 시쳇말로 '뜨고 계시다.'
공신력을 가질만한 커리어를 이어 가고 계시다)
 나 개인에게는 이 '시금석' 의 소중함으로 다가온다.

검색 중 정말 마음에 든 문장을 (허락을 먼저 받아야 하는데-_-;
 하해와 같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길...한윤형님도
언젠가 한 번 꼭 뵙고 싶다) 옮겨 이 교수님에 대한 설명을 대신한다.

" 이렇게 전문가들이 없는 공간에서 아무나 다 문화평론가 행세를 할 수 있게 된 것이 지금의 실상이라고 볼 수 있겠다. <디 워> 사태 때 우리를 수준높은 코미디로 웃겨주신 ‘문화평론가’ 김휘영씨를 떠올리면 상황이 정리가 될까?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훌륭한 문화평론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사람들은 있다. 저자 자신도 말미에서 저서를 통해 언급하는 김영민과 진중권을 거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수준높은 인문학적 에세이를 쓰는 사람들이지만, 정석적인 문화평론가들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마이크로적인 문제에서 빛나는 김영민의 시적 통찰과 매크로적인 문제에서 빛나는 진중권의 정치적 감수성은 앞서 언급했던 저자의 ‘방법론’에 비하면, 직관의 영역에 속해 있다. 그러므로 김영민 진중권 두 사람에 비한다면 이택광은 범용한 문화평론가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 범용한 사람이 오직 한 사람이라고 다시 말한다면, 이 범용함은 어느새 비범함이 된다. "

[From
http://yhhan.tistory.com   한윤형님의 이택광, 그리고 문화평론(2008/01/02)]

이런 분이시다. 살다 보면 정말 '운명' 과 '예정된 만남' 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큰 느낌을 받게 되는데,
게을러빠진 나의 대학 졸업의 길목(그 것도 어찌 다 늙어서 다니는 4학년 2학기에!!!)에서
'이택광 교수님' 을 뵌 것, 또한 영미 에세이 수업을 통해 너무도 과감하게-_-; "Roland Barthes" 와
조우하게 된 것이 그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은 더욱 더 '운명' 이지 않았나 생각이
짙어진다.

참으로 재미있었던 것이 그토록 (그 당시의 포스팅의 양이나 품격 면에서도)
'딴에는 지성인인(좀 미안한 마음이 든다.비꼬는 점도 어느 정도 있다.
물론 나도 포함하는 것일 것이다) 교수님의 제자들이 읽어볼 필요성이 매우 큰 '분석' 과'성찰' 이
가득 차 넘치는 블로그를 '수업' 중에 특별히 언급하신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때 매우 유효적절하게 발동한 나의 호기심이 너무 이쁘다.
교수님 홈페이지로 등재된 블로그 "Wallflower" 와 점점 영향력을 더해가고 있던 교수님의 저서들.
수업은 정말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하자면 '문화충격' 에 즈음하는 생경한 학습의
나날이었지만 (물론 끝내고 난 지금은 너무도 벅차오르는 추억이다) 현역 문화평론가이신 것을
숨기시고 수업을 하신 고수(高手)의 수업을 직접 들은 '행운' 의 나날이었던 것이 남겨진 진실이다.

뭐 여기까지 오면 내가 끄적이고 있는 것이 '동XX기' 오빠들이 내 인생을 바꿨어요,
'슈...' 오빠들이 집 나오고 싶은 저에게 빛이 되어 주었어요 같은 말과 동일하지는 않아도
비슷하다는 것이 드러날 것이다. (이런 말을 어떤 심정에서 하는지 공감했기에
절대 오빠부대라 불리는 헌신적인 소녀들을 비하하는 것 아니다. 그들도 그들이 누릴 '누군가에게
아낌없이 주는 마음의 유희' 가 필요하고 존중받아야 한다)

시류를 냉정하게 읽는 것, 그 것이 자신이 없다면 그러한 시각을 빌려와서라도 
자신의 '세상을 읽는 눈' 에 안경을 씌워주는 것이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무슨 장황한 팬클럽 가입 이유서의 '우리 오빠들에 대한 생각을 적어주세요' 같은
이런 글을 남겨본다. 그런데 쓰고 나니 좀 '부끄러운 줄 알아야' 겠다. 휴 이 놈의 좋은 것은 좋다고
어떻게든 해설을 해야 안정적인 심신을 유지하는 버릇을 고쳐야 하는지-_-;

그동안 어떤 레이블에 소속되어서 써왔던 'Preview' 를 쓰던 습관이 튀어나와
일요일 오후 이러고 있다. 

정리하자면 '최근 글' 을 걸어놓았지만, 포스팅 전체를 따끈한 차와 함께
천천히 읽어나가기를 권유한다. 나는 가끔'지성(知性)의 반신욕' 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그만큼 좋다^^

생각을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은 참으로 좋은 것이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이왕이면 이러한 생각이 당신과 나의 '소통' 으로 이어져 더운 여름에 불어오는 '미풍' 의 청량함을
느낄 수 있는 분위기가 감돌기를 바란다.







by 블랙스콜라 | 2008/06/01 17:23 | 트랙백 | 덧글(5) |
부사리 BUSARI Prologue


 

Prologue - 시(始)


  
  조선 중엽, 왜구의 노략질이 극에 달해 백성들의 생활은 피폐해져 갔다.


  남해안의 한적한 어촌, 장정들은 모두 투망을 하러 나가고 아낙들은 집안일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가실이도 빨래를 다 널고는 잠시 마루에 앉았다.


  ‘어머님, 약값을 좀 마련해야 할 텐데….’


  가실이의 아버지는 마을에서 가장 노련한 어부였다. 다른 어부들이 재미를 보지 못하고 돌아올 때도 정해진 양의 수확을 거르지 않던 아버지 덕에 가실의 가족은 자족할만한 삶을 영위해왔다. 그러던 어느 날 가실의 아버지는 15살이 된 가실의 남동생에게 처음으로 투망질을 가르치겠다고 바다로 나갔다. 부자가 바다로 나간 지 한 시진쯤 지나 하늘이 어둑어둑해지더니 갑자기 풍랑이 일기 시작했다. 가실과 가실의 어머니는 그저 노련한 아버지가 풍랑을 헤치고 돌아오길 빌며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그러나 풍랑이 그치고 돌아온 것은 마을 사람들이 끌어온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는 주검 두 구 뿐이었다. 남편과 아들을 갑자기 잃게 된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가실의 어머니는 몸져눕고 말았다. 가실은 슬퍼할 새도 없이 어머니의 병간호를 해야만 했다.


  가실은 어느새 두 눈에 고인 눈물을 닦고 눈앞에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았다. 잔잔하고 고요하기 그지없는 바다. 그러나 한편으로 아버지와 동생을 데려간 무서운 바다. 할 수만 있다면 어머니를 모시고 바다를 등진 조용한 곳에서 살고 싶은 것이 가실이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던 가실에게 마을을 향해 오고 있는 여러 척의 배가 보였다.


  ‘벌써들 돌아오시나?’


  그러나 배에서 내린 것은 마을 남자들이 아닌 한 무리의 왜구 떼였다. 배에서 내린 왜구   떼는 닥치는 대로 노략하고 마을에 불을 질렀다. 평화롭던 마을은 일순간에 아비규환의 생지옥으로 변했다. 왜구들은 아낙들을 범하거나 배로 끌어갔고 어린 아이나 노인들을 참혹하게 베었다. 가실의 집에도 들이닥친 왜구 한 명이 탐욕에 가득 찬 눈으로 가실에게 다가서고 있었다. 가실은 본능적으로 주위의 물건들을 마구 잡아 던지며 저항했다. 그러나 왜구가 뺨을 갈기는 서슬에 정신을 잃고 말았다. 쓰러진 가실을 덮치려는 왜구 앞에 가실의 어머니가 몸을 던져 막아섰다. 왜구는 칼을 들어 가실의 어머니를 베고는 한쪽으로 밀어버렸다. 차츰 가실에게 다가서던 왜구가 잠시 흠칫하더니 단말마의 비명을 올렸다. 무엇인가에 의해 목을 관통당한 왜구는 힘없이 쓰러졌다.


  “두목, 두목! 큰일 났습니다!”


  배에 남아 있던 두목 격의 사내가 급하게 달려드는 부하를 진정시키며 물었다.


  “무슨 일이냐?”

  “갑자기 나타난 이상한 자가 우리 패의 반 이상을 베었습니다. 정말 귀신같은 녀석입니다!”


  왜구의 두목은 곁에 있던 거대한 일본도를 들고 말했다.


  “앞장서라!”


  마을에 당도한 두목은 여기저기 널려 있는 자기 부하의 시체를 볼 수 있었다. 모든 시체들은 무엇인가에 의해 급소가 관통당해 있었다. 그 중 하나의 시체에서 목에 박혀있던 것을 두목이 뽑아 들었다.


  ‘매화!’


  순간 긴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는 부하 한 명이 시체가 되어 두목의 눈앞에 떨어졌다. 그에 이어 한 사내가 두목과 그의 부하 앞에 섰다.


  “저 놈입니다! 흑귀신입니다!”


  두목 앞에 선 사내는 검은 복면에 검은 복색을 갖추고 있었다. 부하의 말대로 가히 흑귀신이라 이를 만 했다. 흑귀신은 서서히 등에 매고 있던 검을 빼들었다. 두목도 들고 있던 일본도를 추켜들었다.


  “하아-앗!”


  두목의 도(刀)가 반월을 그리며 흑귀신을 파고들었다. 날렵하게 몸을 피한 흑귀신에게 두목의 곁에 있었던 부하가 연이어 달려들었다. 흑귀신은 왜구의 칼을 피해 하늘로 치솟으며 무엇인가를 날렸다. 매화가지에 목을 꿰뚫린 왜구는 길게 비명을 지르고 쓰러졌다. 흑귀신은 땅에 발이 닿자마자 다시 한 번 치솟아 두목의 머리를 노렸다. 두목은 칼을 들어 서슬이 퍼렇게 날아드는 흑귀신의 칼을 막았다. 쨍하고 날카로운 금속음이 났다. 흑귀신은 공중에서 빙글 돌아 두목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땅에 착지했다.


  ‘만만히 볼 자는 아니군.’


  두목은 서서히 거리를 좁히며 빈틈을 노렸다. 그러나 두 사내 모두 틈을 두지 않은 채 날카로운 눈빛만이 오갔다. 두세 번 칼이 오갔는데도 서로에게 상대를 벨 기회가 오지 않자 두목은 칼로 모래땅을 힘차게 그었다. 매섭게 튄 모래가 미처 예상을 못한 흑귀신의 시야를 가렸다. 흑귀신이 주춤한 사이 두목의 도가 번쩍 했다. 어깨를 움켜쥐며 흑귀신은 저만치

피했다. 한번의 공격이 성공하자 자신이 생긴 두목은 긴 기합과 함께 흑귀신에게 달려들었다. 무척 불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흑귀신은 침착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만치에 죽은 왜구가 떨어뜨린 도가 보였다. 날렵하게 몸을 날려 땅에 놓여진 도를 발로 찼다. 도가 날카롭게 두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예상치 못한 반격에 흠칫하며 몸을 피했지만 다음에 날아드는 흑귀신의 검을 피할 수 없었다.


  “어-억!”


  거대한 고목이 쓰러지듯 두목은 괴성을 지르며 쓰러졌다. 흑귀신은 아픈 어깨를 추스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상처 치료를 위해 마을의 한 집에 들어서니 한 여인이 신음을 하고 있었다. 일으켜서 물을 마시게 하니 정신이 드는지 흑귀신을 천천히 바라봤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누구…, 앗! 어머니!”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던 가실의 눈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어머니가 보였다. 가실은 어머니의 주검을 부둥켜안고 오열을 했다. 한참을 통곡하고 난 가실은 멍하니 바다만 바라보며 마루에 앉아 미동도 하지 않았다. 흑귀신은 가실의 어머니를 모셔다 마을 근처에 묻어 주었다. 가실의 어머니를 묻고 오자 가실이 마루에 앉아 눈물이 그득한 눈으로 그를 맞아 주었다.


  “이제 어쩔거요…?”

  “이제는 어머니까지 가시고, 저도 더 이상 세상에 연을 두고 싶지 않습니다….”

  “약한 말씀 마시오.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법이오!”

  “흑...흑흑...”


  오열하는 가실을 보자 흑귀신은 문득 자신의 과거가 떠올랐다.  


  흑귀신의 아버지는 강직한 선비였다. 벼슬아치들의 부정에 염증을 느낀 선비는 가족을 이끌고 깊은 산골에 정착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어려워만 가는 국운을 우려하여 계속해서 충언이 담긴 상소문을 올렸다. 충언을 귀에 거슬려 하던 썩은 벼슬아치들은 자객을 보냈다. 아버지가 자객에게 살해되고 화근을 없애겠다며 어린 아들에게 자객이 칼을 들어 내리치는 순간 어머니가 막아서서 대신 칼을 맞았다. 죽을 위기에서 흑귀신을 구한 것은 한 스님이었다. 그 스님은 밤이 늦어 묵을 곳을 찾다가 죽임을 당하려는 아이를 구하게 된 것이었다. 아이를 데려다가 자신의 암자에서 키우며 신묘한 하늘의 이치와 무술을 가르쳤다. 아이가 장성하여 18세에 이르자 스님은 아이를 불러 전언을 했다.


  “내가 너를 만난 것도 어쩌면 하늘의 이치였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 헤어지는 것도 하늘의 이치인 것을 알아두거라. 내가 너에게 무술을 가르친 것은 너의 업보가 평생을 불의한 무리와 싸워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디 몸조심하고 바른 길만 가도록 해라….”


  스님은 전언을 하고는 깊은 산 속으로 유유히 떠나갔다. 그 후로 흑귀신이 된 아이는 부정한 관리를 응징하고, 백성들에게 고통을 주는 불의한 무리에 맞서왔다. 이런 흑귀신을 민초들은 ‘일지매’라 일컬었다….


  “나를 따르겠소?”


  가실은 눈을 들어 일지매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한없이 따뜻했다. 가실은 말없이 일지매의 품에 안겨 다시금 오열을 터뜨렸다. 일지매는 그저 가실을 안고 있었다. 마치 가실의 그 모든 슬픔을 품에 안은 듯이….



<계속>


* 본 작품의 저작권은 방아쇠효과(triggaeffect)/Black Scholar 에게 있습니다.

by 블랙스콜라 | 2008/02/18 03:06 | 부사리(연재) | 트랙백 | 덧글(0) |
부사리 BUSARI 쓴 놈의 이야기
 


쓴 놈의 변(辯)


  인생을 살다보면 ‘발굴(發掘)’의 순간이 한 번 이상 온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고고학자는 아닙니다만 본 부사리의 프롤로그가 된 제목이 “흑야차”라고 되어있던 글이 저에게는 ‘발굴’의 대상이었습니다. 짐작컨대 낡은 노트에 남은 이 프롤로그는 약 11년 전에 쓰여진 것 같습니다.(프롤로그가 마치고 시작을 하다가 만 부분에 1997년이라고 적혀있는 것으로 봐서는 그러하네요) 가끔 그렇네요. 어린 시절, 뭐 따지고 봐도 사춘기도 훨씬 지난 십대의 끝자락이었던 것 같은데, 아무튼 그럴싸하다는 느낌을 받은 이 노트는 가끔 읽어보며 와 그 때 이런 짓-_-;도 했었나 하는 생각을 하고는 했습니다. 어쨌든 벼르고 벼르다가 결국 이 프롤로그에 이어서 십대에 했던 “잘한 짓”을 살려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이런저런 설정이 변하면서 꽤나 제 나름 즐길만한 구성이 머릿속에서 그려졌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부사리라는 “서사시를 쓰기로 마음먹고 시작하는” 이야기는 결국 이런저런 설정이 용해되어 그 시작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국형 히어로물, 한국형이니 ‘한국형 영웅물’을 꾸준히 생각해왔는데, 어린 시절 쓴 노트를 발굴하고, 그동안 생각했던 상상 속의 여러 구성을 끼워 맞춘 후, 한국형 영웅물이라는 일단 듣기에 좋은-_-; 외양을 씌우니 결국 이 글로 귀결이 되더군요. 부사리도 나름 고민해서 결정한 제목인데, 뜻은 한 번씩들 찾아보시면 더욱 재미있을 듯 합니다^^


  우리말에 참 좋고 어감도 아름다운 단어들이 참 많습니다. 사실 원래는 야크샤, 야차의 이미지가 좋아서 흑야차라는 제목을 선호했고, 문제의 노트에도 흑야차라고(어릴 때부터 좋아했군요-_-;) 적어놓았습니다만 결국 그래도 한국형 영웅물을 마음먹었으면 건강하고 역동적인 뜻이 좋을 듯 하여 검색도 하고 생각을 연이어 한 후 “부사리”로 최종 결정을 하였습니다. 


  제가 사실 중고등학교 때는 이우혁님의 ‘퇴마록’에 빠져있었고, 무협을 좋아했다기 보다는 글로 이루어진 액션을 좋아했던 것 같은데(무협은 사실 이미지를  좋아할 뿐 제대로 잡고 읽어보지를 못했습니다) 기억해보니 이런저런 글을 습작했었습니다. 그 중 일부가 본 프롤로그인 것이고, 읽다보니 저도 여러 가지 제 유년의 편린을 다시 상기하게 되는 군요^^


  ▪ 정말 핏덩어리^^ 시절에 유선방송에서 보았던 ‘일지매’ 영화 - 주제가가 “♬일지매를 찾으러 가자~” 뭐 이랬던 거 같은데, 인상이 이렇게 깊이 남은 거 보니 일지매란 컨셉 자체, 그리고 그 영화들을 꽤나 좋아했었던 것 같습니다


  ▪ 장동건씨가 주연을 맡았던 ‘일지매’ - 드라마는 다 보지 않았는데, 검은 옷의 모습에 대한 인상이 이 작품에서 남은 것 같습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아무래도 일본의 닌자가 많이 반영된 것 같은데,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의 여러 영상물에서 다뤄지는 자객은 검은 복색에 얼굴을 가리고 있는 닌자의 인상이 좀 있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뭐 그러한 복색을 굳이 닌자만 했겠습니까? 그리고 현재 다뤄지고 있는 자객들이 굳이 닌자를 연상시키지는 않죠^^ 저도 어릴 때 쓴거라 등장인물 외양묘사가 그렇게 되어있던 듯 싶은데 아량으로 용서하시길^^


  ▪ 이우혁씨의 위대한 작품들 - 이 분은 정말 전설같은 분이십니다. 이 분에 관한 얘기는 아무래도 논문을 향해 달려갈 것 같으니 그냥 ‘전설’이란 단어로 모든 것을 대체하겠습니다. 특히나 이런저런 주인공의 대결이나 이른바 액션의 묘사가 참으로 어린 마음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제가 굳이 모사를 하겠다는 것은 아니나(창작에서 모사는 자멸의 지름길이죠) 분명히 제 의식의 저변에는 이우혁님이 이끌어오신 한국형 판타지에 대한 존경과 깊은 인상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저도 다른 방향으로 이러한 이우혁님의 의미있는 성공을 닮고 싶습니다.


  이 짧은 프롤로그에 별별 얘기를 다 가져다 붙입니다만^^ 암튼 이러한 설정과 영향을 준 소재들이 있다는 걸 밝히고 더 길어지기 전에 이만 마무리하겠습니다. 시작보다 점점 많은 얘기와 생각거리를 담는 진행을 하고 싶네요^^ 좋은 피드백을 이끄는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행복하세요.


p.s.1 부사리의 표지는 이중섭 화백의 “떠받으려는 소”를 사용하였습니다. 저작권 만료를 확인하고 사용하였습니다. <참고: http://freeuse.copyright.or.kr>


p.s.2 부사리의 영문표기는 2007년 3월 13일에 개정된 한글 영문 표기를 따라 정했습니다.


p.s.3 본 작품의 저작권은 방아쇠효과/Black Scholar 에게 있습니다.

by 블랙스콜라 | 2008/02/18 02:59 | 부사리(연재) | 트랙백 | 덧글(0) |
순류(The Golden Flow) EP.3

      

    




 

3. Live Club "브라더후드”


  97-8년경 외국의 한 ‘문화’가 국내에 서서히 스며들고 있었다. 서울 강남의 아이들에게 나이 드신 분들이 “똥싼 바지”라고 미간에 주름을 지으시며, 말씀하시는 “배기팬츠(힙합 바지)”를 입는 것이 유행이었다. 그리고 그 바지에 어울리는 음악 또한 서서히 젊은 층의 음악 감상 리스트를 검은 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야 역시 우탱클랜(*주1)이 죽인다. 이 메쏘드맨(*주2) 말야. 진짜 맛깔나게 뱉어내지 않냐?”

  “뭐 내 삘에는 Bone Thugs-N-Harmony(*주3)가 맞는 거 같아. 졸라 빠른 것이 마음에 들어 낄낄”


  홍대의 한 편의점에서 라면과 김밥으로 허기를 때우고 있던 Rapper 제타(본명: 이우형)는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머리에 힘을 많이 주고 헐렁한 힙합바지를 입은 채 삐딱한 자세로 얘기를 나누고 있는 두 아이들에게 눈이 갔다.


  ‘호, 우탱클랜과 본떡이라, 그래도 많이 듣는 애들이네….’


  사실 뭐 자신이 많이 듣네 뭐네 라고 판단할 것도 없다고 순간 제타는 생각했다. 그럴 것이 아직은 저변이 그렇게 넓지 않은 문화였기에, 그렇게 자부심있게 누군가를 판단하기도 어색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저렇게 들어주는 애들은 고맙지. 빌린 것만 아니면 쥬라식 파이브(*주4)도 같이 듣고 싶다만.’


  정말 건너 건너서 알게 된 친구의 미국 친구에게서 어려운 경로로 빌려 듣게 된 쥬라식 파이브라는 팀의 앨범이 요즘 제타의 마음을 끌었다. 사실 EP(*주5)라는 개념의 ‘힙합 음악에 관심 없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곡의 수가 너무 적어서 매력이 없을 앨범’ 이었지만, 제타에게는 이게 왜 좋은지를 당당히 밝힐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이 추구하고 있는 것에 많이 부합하는 면이 있었다.


  ‘각자가 좋아하는 분야를 열심히 파고든 고수들이 장점만을 담은 결과물을 낸 것이지. 나도 그런 작업에서 결과물을 내고 싶다.’


  제타에게는 아직 없고, 이 쥬라식 파이브의 앨범에 있는 것은 DJ(*주6)의 섬세한 테크닉이었다. 이 쥬라식 파이브의 앨범은 DJ가 깔아 놓은 멍석에 MC(*주7)들이 제대로 놀며 재주를 부린 이를테면 ‘성공한 마당놀이’인 것이다. 그리고 이 마당놀이는 제타를 포함한 많은 관객의 마음을 흥겨움으로 가득하게 하는데 성공했다. 제타로서는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아차, 잘못하면 늦겠다.’

 

제타는 클럽 “브라더후드”의 공연진 미팅 시간이 얼마 안 남은 것을 알아채고, 서둘러 편의점을 나섰다.


  “어, 형 왔어요? 안녕하셨어요?”


  클럽 내에서 솔로 랩퍼로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져 있는 제이디(Jay-D, 본명: 김준동)가 제타를 알아보고 인사를 했다. 제이디와는 현재 같이 녹음할 곡을 정해놓고, 자주 만남을 갖는 편이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다른 멤버들을 기다리다가 문득 제이디가 질문을 던졌다.


  “아, 형 근데 형 랩퍼명(랩퍼로서의 이름)이요. 전에 설명해주셨던 것 같은데, 어떻게 하다가 쓰게 된 거 랬죠?”

  “뭐 전공이 전공이다 보니 제어열핵반응장치(*주8)의 약자가 우연히 ZETA 더라고, 그리고 그리스 자모 있잖냐. 알파, 베타 하는 그거, 그리스 자모로 여섯 번째가 이 제타야. 농구에서 식스맨이 참 멋있잖아. 힙합음악에 있어서도 식스맨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는 바람이지. 근데 진짜 솔직히 얘기하자면 내가 건담 애니메이션 중에서 제타건담을 제일 재미있게 봤어. 하하”


  제타는 현재 물리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었다. 제이디는 제타의 이름 해설이 결국 애니메이션으로 맺어지자 재미있었다.


  “준동이, 너는?”

  “아, 그냥 제 이름 약자를 좀 폼나게 쓰고 싶었어요.”

  “그랬구만, 그나저나 다들 올 때가 된 것 같은데.”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아닌게 아니라 한명씩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서 이어진 회합은 이런저런 공연 계획에 대한 의견들이 오고 갔다. 어느 정도 얘기가 진행되자 세부적인 공연에 관계된 내용들이 결정되고, 회의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사적인 얘기를 하는 분위기로 옮겨갔다. 그들의 주제는 매번 비슷했는데, 대중의 관심사와는 거리가 있는 매니아적인 특성이 강한 음악을 하는 것에 대한 비애나 그러한 음악이 용인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들의 얘기는 그들의 경험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으로 절절함이 있었다.


  “어제는 홍대놀이터 부근에서 스피커 가져다놓고 게릴라식으로 공연을 했거든. 근데 사람들이 쳐다보는 거야. 뭐 눈빛에서 ‘그게 뭐냐? 쓸데없이 시끄럽다’라는 마음이 읽히는데 참 착잡하더라.”

  “사실 이런 거 저런 거 생각하면 혼자 좋아하고 혼자 들으면 되거든. 근데 맨날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도 없고, 일단 정서상으로 거리가 있는 본토 것만 들을 수는 없잖아. 우리가 자신의 마음이나 생각을 자유롭게 음악에 담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라 시간을 두고 계속 무엇인가를 해나가면서 변화를 시켜야 된다고 생각해.”

  “솔직히 랩이라는 개념이 잘못 잡혀 있는 것이 제일 안타까운 것 같아. 물론 랩의 특성상 가요나 여타 노래에서 양념 역할을 하는 거야 그나마 랩이 알려지기는 하는 거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힙합이라는 거 자체의 부분으로서의 랩은 이게 또 대중들에게는 지루한 거지. 어제는 아는 친구에게 나스(*주9) 1집을 들려줬거든. 결국 멜로디가 약하다고, 곡 자체가 그저 자기가 랩을 잘 한다고 자랑하는 것 뿐이라고 자기 취향은 아니라고 하더라. 난 이게 어느 정도는 지금 현재 대중이 이 힙합음악이라는 것으로서의 랩을 바라보는 시각이라고 생각해.”

  “양념으로 들어가는 랩은 좋다고 느끼는 것 같은데 랩이 전부를 차지하는 곡은 꺼리는 거지. 도구로써 쓰일 뿐, 원래 랩이 생겨났던 처음 모습에서 많이 왜곡되었다고 생각해. 뭐 관심없는 사람들을 탓하기 보다는 랩의 재미와 본래의 모습이 가요에서 소모되고 있는 랩의 이미지를 극복할 만큼 우리가 지금 하는 것에 의지를 가지고 해나가는 것이 그나마 우리가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그 점은 그런 것 같아. 일단 알려나간다는 것에 방점을 찍고 수준이 높은 가사와 음악을 만들어내는 거야. 뭐 좋아한다는 것을 하고 있다는 거 자체가 즐거운 것이 아닐까? 무엇인가를 알고 그 것을 해나가는데 자부심 정도는 가지고 흔들리지 말아야겠어. 어찌 보면 우리가 후에 선구자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

 

  설교를 하며 가르치기 보다는 이것이 왜 좋은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에서 얘기는 정리가 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 이렇게 자신들이 생각하는 ‘랩’에 대해 고민하고 행동하는 것이 그들이 그들의 젊음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어나가는 방법인 것이다.

 

  “뭐 이쯤 하고 밥이나 먹으러 가죠.”

  “간단하게 술이나 하면서 먹을 수 있는 곳으로 갈까?”

  “암튼 형우형은 진짜 술 좋아한다니까, 알콜 중독 아니예요?”

  “허허 풍류에는 술이 꼭 있어야하는 법이야. 랩을 하는 이태백(*주10)도 괜찮지 않냐?

동양문화와 서양문화의 절묘한 만남. 괜찮지 않아? 껄껄”

  “자자 이동합시다. 이동”


  며칠 후 홍대 라이브 클럽 ‘브라더후드’


  한참 리허설 중인 듯 클럽 밖에서도 쿵짝거리는 음악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클럽이 설립된 초창기에는 락그룹들의 공연도 있고, 인디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면서 명성을 쌓아가고 있었다. 현재는 ‘언더그라운드 힙합(*주11)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곳’ 으로서 그 이름을 알려가고 있었다. 공연 자체도 힙합만으로 재편되었다.


  “와 티켓이 10장이나 팔렸다.”

 

  평소에 조용하고 침착한 성격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 제타였지만, 오늘은 마치 가지고 싶던 3단 변신 로봇을 선물로 받은 아이처럼 기뻐했다. 제타의 그룹 “적토마”와 제이디의 공연이 있는데, 관객이 10명 정도 온 것이다. 점점 관객 수가 늘어나는 추세기는 했지만 오늘이 그동안 “적토마”의 공연에서 제일 유료관객이 많은 날인 것이다. 제타에게는 상당히 기운이 나는 일이었다.

 

  제이디의 솔로 공연이 끝나고, 적토마의 공연이 진행되었다. 그래도 랩이 전부를 차지하는 음악에 공감하고, 또한 그 것이 한글로 된 가사로 전개되는 것의 의미를 알아주는 관객들이라 호응이 좋은 편이었다. 제이디와 함께 하는 곡을 마지막 곡으로 하기 전에 제타는 짧은 멘트를 했다.


  “이렇게 찾아와 주셔서 일단 정말 감사합니다. 힙합음악이라는 것이 아직은 그렇게 공감대가 큰 음악인 것은 아닌 것 같네요. 하지만 이 힙합음악 속의 랩의 장점은 지금 우리가 고민하고 있고, 잘 되길 바라는 일에 대해 얘기해 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는 거죠. 특히나 음악에 그 것을 풀어낼 수 있는 흥겨운 대화인 셈이죠. 저희는 우리의 정서와 우리의 생각을 우리의 말로 풀어낼 수 있어서 정말 기쁩니다. 여러분도 같이 즐겨주세요.”


  제이디는 무대의 옆에서 제타의 멘트를 들으며, 정말 제타의 진솔함이 묻어나오는 멘트라고 생각했다. 자신을 위한 마이크를 하나 더 챙기며, 제이디는 제타의 옆에 섰다. 마지막 곡은 적토마에서 제타와 솔로 제이디의 듀엣곡이었다. “홍대유람”이라는 그 들의 곡의 전주가 시작되었다.


  (*주12) ♬ 이 곳은 문화를 친구삼아 걷는 홍대의 거리

                 아직 이 곳에는 힙합의 향기는 적지

                 연인과 손을 잡고 듣는 가요보다는

                 자유를 상징하는 음악 바로 힙합을

                 우리말로 랩을 하는 나의 자긍심

                 하지만 우리 주위에서는 그저 귀를 닫으니

                 타협의 여지 없는 고독한 이 길이

                 우리가 유랑하는 홍대의 슬픈 여행길

                 내 이름 랩퍼 제타 내가 올라탄 적토마

                 함께 하는 제이디 나의 랩은 시이지

                 홍대의 길거리를 걸으면서 생각해

                 드럼소리 가득한 이 거리를 꿈꾸네

                 너와 나 힙합으로 하나됨을 꿈꾸네

                 내 손을 잡아 이 소리를 마음에 담아

                 하나의 울림으로 퍼져가는 힙합을 봐라

                 제타와 제이디의 힙합 홍대유람기♬


                                (제타&제이디 1998 “홍대유람” 중에서)


  제타와 제이디가 주고 받으면서 공연한 마지막 곡이 관객들의 박수 속에 끝났다. 아직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진행되는 그들의 힙합에 대한 사랑은 아니다. 하지만 공연을 마치고 내려오면서 느끼는 상쾌함은 언제나 그들에게 기쁨이었다.


  ‘우리는 정말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있어.’


  “형, 내일 거리 공연도 기대되요.”


  내일은 압구정의 한 백화점 앞에서 공연을 한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바로 현장에서 같이 호흡한다는 매력이 있는 거리공연이다.


  “어 그래, 호응 좋았으면 좋겠다. 정말 수고 많았어.”


  그로부터 몇 년 후, 지방에서 세 명의 사람들이 ‘브라더후드’를 찾았다. “한국 힙합의 성지”로 명성을 날리던 라이브 클럽 ‘브라더후드’ 는 이제 BH 프로덕션이라는 소속 뮤지션 들의 앨범을 발매하는 레이블(음반회사)로 거듭나면서 마지막 라이브 공연을 열고 있었다.


  “아…. 형진이 형, 들어갈 수가 없데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지방에서 올라왔다고, 꼭 보고 싶다고 얘기해 봐.”

 

  재신은 계속 물어봤으나, 입구를 지키고 있던 관계자는 안타깝지만 자신도 나와 있어야할 정도로 사람이 너무 꽉 찼다고 얘기했다. 세 사람은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아까 잠깐 제이디도 왔다 갔다한 것 같아요.”


  현준이 못내 아쉬워하며 말문을 열었다.


  “아…. 마지막이라고 해서 무리해서 올라왔는데, 진짜 많이 아쉽네.”

  “그러게 말이다. 기차로만 3시간이 넘게 왔는데. 쩝”

  “뭐 이렇게 온 것, 다른 데라도 한 번 가보죠.”

  “재신이 형 진짜 아깝네요. 제타 공연 한번 보고 싶었는데.”


  지방의 열혈청년들을 불러낼 정도로 라이브 클럽 ‘브라더후드’는 선 굵은 흔적을 남기고 클럽으로서의 역사를 마감하고 물러났다. 하지만 이미 브라더후드만이 유일한 힙합클럽이 아니었으니, 많은 수의 클럽들이 새로 생겨나 라이브로 펼쳐지는 힙합음악의 매력을 점점 늘어나는 힙합팬에게 제공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정말 쉽게 전설을 얘기하고 또한 한동안 전설로 추앙하던 것을 빨리도 잊는다. 하지만 ‘브라더후드’ 라는 이름은 그 안에 존재했던 수많은 열정과 땀을 연료로 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계속 타오를 것이다.


  ‘라이브 클럽 브라더후드, 이 곳은 좋아하는 것을 열정을 가지고 할 줄 아는 사람들의

공간입니다….’


  공연 홍보를 위해 배포된 팜플렛에 새겨진 이 말이 오늘따라 홍대 거리에 소리 없이 크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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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랙스콜라 | 2008/01/16 21:03 | 순류(연재) | 트랙백 | 덧글(0) |
(졸업맞이 단편) 벚꽃 흩날리던 시간(2)

  세현은 좀 더 유려한 손놀림을 시도하고 있었다. 아이의 유완한 감촉의 구석구석을 살피는 중이었던 것이다. 세현의 손이 아이의 옷을 비집고 들어가 피부가 주는 감촉을 훑고 있었다. 소년이 소시지의 흔적을 막대에서 훑었듯이 세현은 자신의 감각세포와 마찰하는 겁에 질린 연약함을 철저하게 즐겼다. 이윽고 세현의 손이 소년의 하복부를 향해 미끄러져 갔다.


  “뭐하는 거야!”


  금속성의 고함이 놀이터에 울려퍼졌다. 분노로 얼굴이 일그러진 한 여성이 세현에게 불이 붙은 듯한 눈빛을 쏘고 있었다. 그녀는 재빠르게 소년을 세현에게서 떼어냈다. 이를 가는 소리가 괴기할 정도로 섬뜩하게 세현의 귓가에서 울렸다. 물리적인 힘의 차이가 없었다면 그녀는 세현을 가리가리 찢어놓았을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당신 뭐야?”


  그녀의 목소리가 한층 더 높아졌다. 그녀의 얼굴을 향해 고개를 돌린 그는 갑자기 무력함을 느꼈다. 이번에는 소년의 경우처럼 침입을 할 수 있는 다름의 세계가 아니었다. 분명히 아니다. 이상하게도 세현의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대항하려는 의지를 좌절시키는 미지의 힘을 가진 주인과의 만남이었다. 분을 이기지 못하는 듯 그녀가 세현의 뺨을 향해 손을 날리려 했다. 


  “어...엄마….”


  소년이 여성의 치맛자락을 붙잡았다. 안도감인지 공포의 여진 때문인지 소년의 눈물자국은 굵어져 있었다. 소년의 잔루(殘淚)는 긴장의 첨단에 있던 순간에 잠시 정적을 가져왔다. 그녀는 결국 손을 내렸다. 하지만 식지 않은 분노는 그녀의 입안에서 타액으로 변해 세현의 얼굴을 향해 뿌려졌다.


  “개 같은 새끼”


  그녀는 소년의 손을 잡고 돌아섰다. 멀어져가는 모자(母子)의 대화가 바람에 실려 세현의 귓가에 흩날렸다.


  “세현이 너! 엄마가 모르는 사람 따라가면 된다고 했어? 안 된다고 했어?”


  아이를 꾸짖는 여성의 노한 음성은 봄날의 하늘로 퍼져나갔다. 이상했다. 분명히 이 놀이터 근처에는 벚꽃 나무가 없었다. 한 차례의 바람이 다시 불어왔고, 세현은 벚꽃 무더기가 자신의 주위에서 흩어지는 것을 보았다. 훈풍이었지만 벚꽃의 향기를 씻어버리기에 충분한 바람이었는데도 꽃냄새는 세현의 코를 강하게 자극하며 현기증이 나게 했다. 벚꽃 향기는 점점 역한 느낌의 다른 냄새로 서서히 변해갔다.


  세현은 스르르 눈을 떴다. 희뿌옇던 시야가 점점 제 모습을 찾으면서 주위의 모습이 형태를 찾아갔다. 세현의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군데군데 벗겨진 부분이 있는 페인트칠을 한 벽이었다. 구석에 곰팡이가 핀 낡고 오염된 나무 바닥도 눈에 들어왔다. 시큰거리는 통증이 오른손에서 전해져왔다. 이미 많은 피가 그의 동맥에서 쏟아져 나왔다. 어지러움을 느끼면서 세현은 손목에 박혀있는 유리조각을 빼냈다. 유리가 박혀있던 구멍에서 피가 한층 더 샘솟았다. 세현의 옆에 놓여진 알이 깨지고 구멍이 난 채로 버려져 있는 안경에서 나온 파편이었다. 좁은 방 안에서 세현은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던 중인지 깨달았다. 그리고는 희미하게 웃었다. 힘이 빠져가는 왼손을 들어 팔목에서 나오는 피를 손가락에 묻혔다. 세현은 바닥에 하나하나 글자를 써나가기 시작했다.


  ‘C...l...i..c...'


  나무 바닥에 ‘Cliche’ 라는 글자가 남았다. 세현은 무언가에서 놓여진 느낌이었다. 몽롱해지는 정신 속에서 세현은 많은 사람이 택하는 식상한 탈출구의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며칠 후, 교정직 공무원으로 26년을 산 김 교도관은 께름칙한 수감자의 사형집행을 위해 이동하는 중이었다. 며칠 전 독방에서 자살을 시도한 녀석으로 교도관 사이에서도 ‘미친 꼴통’이라는 이름이 좀 더 녀석을 식별하는데 빠른 존재였다. 3-4살 정도의 아이들만 골라 추행하였고 몇몇 아이는 저항이 심해 목을 졸라 살해를 하였다는 점도 추가로 밝혀지면서 한동안 세간을 들썩이게 했던 녀석이었다. 수감 시설 내에도 소문이 돌아 동료 수감자들의 주먹세례가 하루를 거르지 않아서 임시방편으로 독방으로 옮겨 놓은 상태였다. 사실 김 교도관의 경험에 비춰보더라도 수감자 간의 폭력, 그것도 한 명에게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구실이 필요한 때에 적절한 명분이 주어진 경우였다. ‘미친 꼴통’ 2098호가 아주 잘 맞아떨어지는 예였다. 이유 없는 언짢음을 적당한 도덕의 심판에 입각해 풀 수 있는 아주 좋은 대상이었다. 김 교도관의 입장에서는 결국 똑같이 죄를 지은 놈들끼리 아주 웃기는 짓을 하고 있는 것이었지만 2098호에게 그다지 동정이 가지는 않았다. 저지른 죄도 죄지만 한창 자신의 월급에서 과자 값을 까먹고 있는 손주가 떠올라서 더욱 그랬다. 어제는 놀이터에서 손주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 터였다. 2098호는 주로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꾀어내어 범행을 저질렀다고 했다. 김 교도관은 잠시 몸서리를 쳤다.


  ‘쳐 죽일 놈’


  김 교도관은 수감시설 내 간호시설로 이동 중이었다. 간호시설로 이송되던 그 당시 2098호는 아침을 먹은 후 실외활동을 하고 자기의 감방 안에 있었다. 점심 배식 시간이 되었는데도 소집에 응하지 않아 김 교도관이 직접 그를 호출하러 감방 문을 열었을 때 그는 마룻바닥을 피로 흥건하게 해놓고 있었다. 급하게 응급처치를 한 결과 사망을 막을 수 있었고, 교도소 내 간호시설에서 상태가 호전되기를 기다렸다가 사형집행을 하는 오늘에 이른 것이었다. 자살 시도 이후 충분한 회복 기간이 필요했지만, 피해 부모들의 끝이 없는 탄원이 있었고 죄질이 매우 나빴기에 2098호가 걸을 정도로 회복이 되었다는 의사의 소견이 나온 후 바로 재집행 일자가 결정되었다.


  김 교도관은 간호시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2098호는 멍하니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일어나라. 집행시간이다.”


  느릿느릿 죄수가 일어났다. 김 교도관은 묵묵히 죄수의 손에 밧줄을 묶었다. 초점을 잃은 죄수의 눈이 더욱 김 교도관의 심사를 뒤틀리게 했다.


  ‘도대체 이 새끼는….’


  죽음이 임박한 시간의 사형수는 항변의 의사를 눈 안에 가득 담고 있거나 참회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무감(無感). 그 외의 어떠한 것도 죄수의 눈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김 교도관은 2098호가 자신이 사는 동네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장소에서 검거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할아부지’ 를 찾는 자신의 손주의 얼굴도 슬며시 떠올랐다. 자신의 업무라 해도 김 교도관은 곧 이런 녀석을 죽였다는 죄책감까지 떠안아야 한다. 죽음 앞의 체념이라기보다는 원하던 놀이를 마음껏 한 후 흥미를 잃고 허무해진 듯한 이 죄수의 눈빛은 가끔 김 교도관이 느끼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회의감을 짙게 했다.


  사형 집행장으로 가는 복도를 따라 세현은 교도관을 동행한 채 걷고 있었다. 창밖으로 벚꽃나무가 꽃잎을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그 나무 밑에서 한 소년이 말을 타고 맴돌고 있었다. 한 남자가 소년에게 다가섰고, 소년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세현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가슴이 뒤틀리는 감정을 느꼈다.


  김 교도관은 갑자기 복도에 우뚝 서서 창밖을 응시하며 움직이지 않는 2098호를 바라봤다. 그가 바라보는 방향에는 관리가 소홀하여 말라죽은 고목나무가 서있었다. 교도소장의 명령으로 조만간 뽑혀나갈 나무였다. 창밖을 응시하던 2098호의 얼굴에 괴로운 감정이 떠올랐다. 김 교도관은 생명이 다한 나무를 바라보며 자신의 죽음에 대해 이제야 실감하는 모양이라는 생각을 했다. 더는 지체할 수 없었기에 김 교도관은 2098호의 옆구리를 툭 쳤다.


  “뭐해?”


  번뇌의 표정이 가득한 채 세현은 다시 집행장을 향해 움직였다. 사건을 담당한 검사와 교도소 내 일요 예배를 주관하던 근처 교회의 목사, 교도소장이 세현의 사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세현에게 담배가 주어졌다. 세현은 흡연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세상에서 최후로 맛보는 기호식품이라는 생각에 일단 입에 물었다. 처음이자 마지막 흡연은 심한 기침을 동반했지만 마지막으로 해볼 수 있는 ‘행위’ 로서 그리 나쁘지 않은 것이었다. 머리가 띵한 느낌에 세현은 앞에서 기도를 하는 목사의 얼굴이 약간 흐릿하게 보였다. 심한 기침 끝에 눈물이 고인 탓이었다. 눈물을 닦아낸 세현은 목사 가운 사이에서 튀어나온 앳된 소년의 얼굴을 보았다. 세현의 얼굴을 향해 짓궂은 미소를 흘리던 소년은 올가미가 목에 걸린 목마를 목사의 가운 사이에서 슬슬 꺼냈다. 소년은 가로누운 플라스틱 말을 이끌고 이곳저곳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세현은 비명이 목까지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세현의 얼굴에 검은 보자기가 씌워졌다. 세현의 비명은 보자기 안으로 싸여져 들어갔다. 어둡다. 시야가 가린 후에 드는 느낌은 후회감도 억울함도 아닌 빛이 사라진 후의 무용(無用)해진 시각으로 인한 본능적인 공포였다. 세현은 그제서야 몸부림을 쳤다.


  김 교도관은 마지막 발악을 하는 2098호의 모습을 지켜봤다. 그가 자살을 시도했을 때 죽게 내버려두는 것이 옳았을 것이었는지 찬찬히 생각해봤다. 사형은 분명히 단죄(斷罪)이다. 편한 죽음이 2098호에게 보장되어 있지는 않은 것이었다. 얼마 전 야간당직을 서던 중 보았던 TV에서 개그맨이 ‘두 번 죽이는 일이라는’ 이라 하던 유행어가 떠올랐다. 심심해서 틀어 놓았던 TV에서 나왔던 말이 김 교도관의 머릿속에서 갑자기 떠올라 죽음에 임박한 한 인간의 상황을 조롱하고 있었다. 죽으려던 인간을 살려서 다시 죽이는 순간이었다. 단죄이든 복수이든 썩 유쾌한 상황은 아니었다. 물론 자신의 아이가 유린당한 채 죽음을 당한 참상을 겪은 부모의 입장을 이해하는 쪽에 자신의 상황이 가까웠다. 어쨌든 죽어가는 인간을 긴 세월 반복하여 지켜본다는 것은 직업으로써 그리 보람을 가질만한 일이 아니다. 선악의 구분을 떠나 인간의 죽음이 뿜어대는 음울한 기운에 노출되는 것은 유독가스로 가득 찬 공장에서 일하는 거나 다를 바 없는 기분이었다.


  세현은 시야를 가린 보자기 속의 어둠 속에서 자신의 다리를 향해 부딪치는 무언가를 느꼈다. 그리고 그 물체에서 누군가 자신의 몸을 향해 기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 누군가는 자신의 목에 팔을 둘렀다. 목을 감싼 팔의 느낌을 세현은 생생하게 느끼고 있었다. 세현은 속삭이는 목소리를 들었다.


  “아저찌, 괜찮아. 나 업어줘.”


  목을 감싼 팔이 점점 억세게 세현의 목을 조여왔다. 세현은 자신의 시야가 어둠에서 환한 빛으로 변하는 것을 보았다. 환하게, 눈이 멀 정도로 환하게 발하는 빛은 산산이 흩어져 갑자기 화려하게 날리는 벚꽃 무더기로 변했다. 세현은 벚꽃 향을 맡을 수 있었다. 그는 환상이 자아내는 황홀경에 탄성을 삼켰다. 세현은 크게 미소를 지었다.


  ‘덜컹’


  김 교도관은 숨진 사형수의 목에서 올가미를 벗겨냈다. 이어서 보자기를 벗겨낸 김 교도관은 2098호에게 잠시나마 들었던 동정심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역겨운 새끼’


  혀를 빼문 시체의 눈은 만족감을 가득 담은 채 웃고 있었다.




<終>


by 블랙스콜라 | 2008/01/03 23:42 | 습작과 단편 | 트랙백 | 덧글(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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