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대화가 이루어진 것은 Wallflower 블로그 내에서 '박쥐' 평론에 관련된 상황이 이루어지기 전이다.
약간 다를 수 있는 상황이나 '상식이나 일상' 을 들어 반론하는 G님의 발화에서 Wallflower 블로그의
주인장께서 언급하신 '반지성주의' 의 실마리가 있지 않을까 하여 정리해 본다. 연달아 이어진 상황이
유사한 상념을 던져주면서 성찰을 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발단은 J님의 개인적인 생각을 밝힌 글이었다.
" (J님) 아름다운 당신
1. 젊은시절, 잠시 교회에 나갔을 때 일이다. 주일날 설교를 듣다보면, 어렵쇼,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아냐? 누가 볼새라 쥐죽은듯 설교를 듣던 기억이 난다. 불특정 다수일게 뻔하건만 도둑 제발저린다고, 내 스스로 그렇게 생각한 거다. 하긴 나만 그랬을까. 홍상수 영화를 볼 때도 그렇다. 등장인물들은 대개 자의식에 가득찬 3류 지식인들인데, 하나같이 여자꽁무니 쭐레쭐레 따라다니며 어떻게해볼까 궁리나 하는 위선적 속물들이다. 다름아닌 내가 바로 그렇기에 그렇다. 소설을 읽을 때, 혹은 어떤 글을 읽을 때도 종종 그런다.
나는 간혹 감상적인 기분이 들면, '아름다운 당신' 이라고 제목을 붙인 후 글을 써나간다. 앞에서 목사 설교가 그랬듯이 불특정 다수를 지칭한 표현인데, 행여 읽는 이가 특정한 누구로 오해하지 않을까싶다.
2. 우리가 기왕에 알고 있는 확신들, 혹은 이거다, 라고 믿었던 것들이 실은 착각에서 비롯되었거나 근거 없는 것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행복이고, 이것이 바로 정답이라고 말하지만 실은 아닐 수 있다는 것. 반복하거니와 '아름다운 당신'은 단지 순간의 기분에서 비롯된 말일수 있고, 특정한 누구일 수 있으며 불특정 다수일 수도 있다.
3. 책을 읽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마음의 양식, 지식, 교양을 쌓기 위해서거나 취미삼아 읽을 때도 있다. 어떤 경우건, 지속적으로 읽다보면 진리는 결코 하나가 아님을, 내가 그동안 알고있던 것이 전부가 아녔음을, 내내 자신감에 차있던 사실이, 행복해 죽겠다고 여겼던 것들이 실은 말짱 꽝이었다는 것을. 결단코 사실이라고 믿었던 것이 가짜라는 것을, 그동안 내가 믿었던 것은 한낱 피상적이거나 전혀 근거가 없었다는 것도 알게 한다.
그러므로 교양수필에나 나옴직한, 책은 많은 지식을 얻고, 교양을 쌓고, 삶이 행복해진다는 말은 전혀 근거가 없다. 실제는 매사를 의심케하고, 다시 확인케 하고, 되묻게 하니 행복한게 아니라 오히려 불행해질 수 있다. 뿐만인가.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뭔가를 많이 알아서 뿌듯한게 아니라 알아봐야할 것이 많아지고, 뭐가 문제인지 더욱 궁금해진다. 허기가 지고 회의적이 된다면 차라리 읽지 않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식자우환이랬다고, 차라리 모르는게 약일테니. 그러나 그럴수는 없다. 내가 직접 확인해보지 않은 행복을 그대로 접수할 수 없으니 말이다. 남 말만 믿고 무임승차하는 것은 줏대없는 짓이니, 땀흘리지 않은 불로소득치고 실속 없는 것이 많은 법이니.
4. 평생 단 한 권의 책만을 읽었다는 이가 있다. 걱정마시라, 설사 단 한 권 읽지 않아도 행복전선에 하등 문제될게 없으니. 문제는커녕 앞에서 누누히 말한대로 안 읽으면 안 읽을수록 더 행복하고, 확신에차며 룰루랄라~ 마냥 삶이 즐거울 수 있다. 일상의 상식에 기댄 삶일수록 행복전선은 더욱 발치 가까이 있게 마련이니, 당신이 행복하고싶다면 결코 책 따위에 정신을 뺏기면 안 된다. 어쨋든 책을 손에 드는 순간 믿도끝도 없는 고뇌와 회의로 둘러싸일테니.
5. 어떤 책을 읽을 경우, 과거는 대충 뜻을 파악한 것만으로 다 이해했거니 했다. 요즘은 요지 파악은 그만두고 우선 책에 나오는 개념 하나라도 정확히 알아야겠다, 라고 생각한다. 글을 쓰다보면 이런 저런 개념어나 단어를 구사하기 마련인데, 지금 돌아보면 정확히 모르면서도 마구 남발한 경우가 허다했다. 가령 근대철학사에 자주 등장하는 정신이니 영혼, 실제, 주체, 초월자를 비롯해서 불가지론, 무의식, 구조, 타자, 포스트모더니즘, 이데올로기, 욕망, 탈주, 아비투스, 에피스테메 등 숱한 개념들을 정확한 뜻을 모른채 사용했던거다. 어디 이뿐일까.
근자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책 속에 나오는 단어, 개념어를 비롯, 어떻게 하면 보다 투명하고 정확히 삶의 실상을 이해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나아가 어떤 진술이 과연 근거가 있는 것인지, 내가 생각했던 것들이 확실한 것인지, 남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고싶다. 그러기위해서는 우선 개념어들을 정확히 이해하고, 구사하는게 선결과제임을 뒤늦게 알게된 거다./ 계속 "
그리고 G님의 답글이 달렸다.
" (G님) 검색을 통해 여기 카페를 알고, 듬성듬성이지만 그렇게 들락거린 게 한 달 쯤 되는 것 같습니다. 굳이 회원으로 가입할 필요성은 없어서 객처럼 오가다 궁금한 게 있어 여쭙고자 가입했습니다.
<내가 직접 확인해보지 않은 행복을 그대로 접수할 수 없으니 말이다. 남 말만 믿고 무임승차하는 것은 줏대없는 짓이니, 땀흘리지 않은 불로소득치고 실속 없는 것이 많은 법이니.
평생 단 한 권의 책만을 읽었다는 이가 있다. 걱정마시라, 설사 단 한 권 읽지 않아도 행복전선에 하등 문제될게 없으니까. 문제는커녕 앞에서 누누히 말한대로 안 읽으면 안 읽을수록 더 행복하고, 확신에차며 룰루랄라~ 마냥 삶이 즐거울 수 있다. 일상의 상식에 기댄 삶일수록 행복전선은 더욱 발치 가까이 있게 마련이니, 당신이 행복하고싶다면 결코 책 따위에 정신을 뺏기면 안 된다.>
앞에서 듬성듬성 오갔다고 말씀드렸지요. 거기다 실제 사람을 겪어본 것도 아니지요. 제가 본 건 어디까지나 글 뿐입니다. 그러니 제가 님 말씀에 의아해한 부분에도 약간의 오해가 있을 수 있고, 님 또한 다르지 않을 수도 있을 테지요. 가입 후 첫인사이면서 그다지 매끈거리는 얘기를 꺼내는 게 아니어서 이리 말이 길어집니다. 각설하고,
다시 인용한 님의 생각, 그것에 대한 좀더 친절한(?) 설명을 듣고 싶군요. 감각이란 게 일으키는 오류가 적지 않으니 느낌이란 걸 확고하게 신뢰한다는 건 참으로 우습습니다만, 님의 표현이 매우 거칠고 도도해 순간 당혹스러웠습니다.
남이 한 말들이란 소문에 불과한 것인지요? 그래서 확인이란 건 꼭 책, 문서를 통한 것이어야 하는지요? 그렇다면 책은 남의 말이 아닌 건지요? 한 인간이 살아가며 겪는 경험과 과정 속에서 얻은 작은 지혜들로 찾아낸 행복은 '진정한' 것이 아닌 건지요? 그것마저도 어디선가 검증을 받아야 하는 것인지요? 그래야만 안심할 수 있는 행복인 건지요? 그것을 인증해주는 건 누구인지요? 무언가를 바라보는 시각은 시대마다 달라서 님께서 말한 고전에 대한 해석도 다양하지요? 그런 관점에서 다시 본다면 님의 말씀으로 다시 돌아갈 수도 있겠지요? '허기가 진다'는 말씀 말이지요. 님께서 쓴 말에는 더 심오하고 각별한 의미가 있고, 그게 채 다 드러나지 못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누누히 말한대로 안 읽으면 안 읽을수록 더 행복하고, 확신에차며 룰루랄라~ 마냥 삶이 즐거울 수 있다"는 말씀은 평생을 제 논밭만을 일구며 자연 속에서 늙어간 한 농부에겐 진리도 지혜도 없다는 듯 들립니다. 있어보니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지식인들이 왜 가끔 비판대에 오릅니까? 꼭 실천이 결여된 것만을 가지고 하는 게 아니지요. 책 읽고 비평하기도 바쁘지요. 밖에 나와 갖가지 사회운동 해가면서 언제 공부하겠습니까. 단지 책과 말속에서 그치고마는 화려함 내지 수려함 때문이지요. 올려놓으신 펌글에서 진중권 씨의 언변을 언어차력쇼로 표현한 이의 글을 읽고 그 명랑 혹은 발랄한 유머에 웃었습니다만, 그것만 지적 당해야 할 건 아니지요. 지금 우리가 서있는 자리에서 자본이란 건 어찌할래야 어찌해볼 수 없는 가장 큰 틀이지 않습니까? 거기 바깥은 없을 것도 같지요. 어디의 '바깥' 이렇게 표현하는 건 다분히 선택된 관념적인 어휘가 아닐런지요? 자본이 존재치 않는 어떤 판타지적 세계가 아니라 자본계 안에서 자본이 위시하지 못하게, 그것을 무시함으로서 무력해질 수 있도록 만드는 어떤 내부적 힘, 연대적 공동체 관계가 아닐런지요? 결국 자본의 상징적 질서 안에서 싸운다는 것이지요. 책 썼으면 책 선전하러 나올 수도 있는 것이지요. 자본에 아부하는 자세로만 보는 것도 유연한 시선은 아닌 듯 하고요, 다만 싸우려는 자마저 자본을 가지고 싸우거나 자본의 힘을 빌리는 싸움은 자본의 위력을 재긍정하는 일밖엔 되지 않는 것이지요. 아, 어쩌다 진중권 씨로 빠져 자본 얘기까지 나왔습니까? 다시 각설하고,
지식인 얘길하다 삼천포로 빠졌군요. 그러니까 제 생각은 -저 자신도 그저 '제 생각만'을 말할 수밖에 없군요- 지식인들이 그들이 알고 있는 걸 행동에 옮기지 않는 것이 문제(?)의 다가 아니라, 그들이 아는 것을 힘 또는 권력으로써 과시할 때 그들이 평범한 일상인들로부터 비웃음을 받는 거라 여깁니다. 책, 더구나 님께서 지속해서 보고자 하고 함께 읽고자 하시는 책들은 두 말할 것도 없이 훌륭한 것들이지요. 님 글에 제 심리가 불편하게 작동한 것은 책이 아니라, 그 책들을 대하지 않거나 모르는 일상인들에 대한 무시가 담겨 있는 듯하여 그랬지요.
저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는 사람으로써, 그렇잖아도 하루를 어찌 지나는 줄도 모르게 바삐 사는 직장인으로써, 그렇게 훌쩍 지나버리는 시간들을 붙잡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주부로써, 왜 모두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로 가끔은 침울해지는 엄마로써, 발끈한 것이지요. 여기 별볼 것 없고 아는 것 없고 하찮게 일상을 사는 우리도 고민합니다! 하고요.
어떤지요. 행복은 하나가 아니던데요. 그리고 한 가지 행복도 경우와 사건에 따라 색깔을 달리하던데요. 일상도 달리보면 다채롭습니다. 책만이 진리를 말하진 않지요. 예수께서도 오죽하면 글자 하나 남기지 않으셨을까요. 나의 말들은 너희 속에서 살아 움직여야 한다.... 그런 뜻이지 않을까요? 진리는 굳어지면 독입니다. 그래 님께서도 여러 관점의 책들을 섭렵하고 계실 거라고, 그렇게도 여깁니다만 그 진리가 '좌판에서 오래 살아 남은' 책을 통한 것이란 데 찍으신 방점이 약간 불편했음을 말씀드립니다. 하루를 살고 가는 하루살이에게도 나름의 의미가 있고 진리 혹은 교훈이 있어야지요. 그것들보다 무궁히 오랜 시간 속에서 서로를 겪어내는 우리 인간에겐 말이죠. 한 달을 못 넘기는 책을 통해서도 우린 배울 수 있습니다. '배운다' 는 것에 특이하고 독특한 차원의 것만 붙이지만 않는다면, '배움'이 '지식'과 동의어가 아닌 것을 안다면요.
고뇌하는 너의 가슴속에만 진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모든 마당과 모든 숲 모든 집 속에서 그리고 모든 사람들 속에서 진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목적지에서 모든 여행길에서 모든 순례길에서 진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길에서 모든 철학에서 모든 단체에서 진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모든 행동에서 모든 동기에서 모든 생각과 감정에서 그리고 모든 말들 속에서 진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마음속의 광명뿐 아니라 세상의 빛줄기 속에서도 진리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온갖 색깔과 어둠조차 궁극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
진정으로 진리를 본다면 진정으로 사랑하기 원한다면 그리고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광활한 우주의 어느 구석에서도 진리를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어느 시인(?)의 말입니다.
그리고 계속 이어진 상황
" (J님) 의미 전달이 잘 안 된듯하니 제 글을 다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평생 단 한 권의 책만을 읽었다는 이가 있다. 걱정마시라, 설사 단 한 권 읽지 않아도 행복전선에 하등 문제될게 없으니까. 문제는커녕 앞에서 누누히 말한대로 안 읽으면 안 읽을수록 더 행복하고, 확신에차며 룰루랄라~ 마냥 삶이 즐거울 수 있다. 일상의 상식에 기댄 삶일수록 행복전선은 더욱 발치 가까이 있게 마련이니, 당신이 행복하고싶다면 결코 책 따위에 정신을 뺏기면 안 된다."
이 글에서 '행복'이란 일상의 상식에 기댄 행복, 가령 출세해서 돈많이 벌고 건강하고 내 가족 탈 없이 건사하는 것만을 최상의 행복으로 여기는 것을 뜻합니다. 이런 식의 행복은 대개 TV 드라마나 우리네 일상 주변에서 흔히 통용되고 인정되는 것들이지요. 이에반해 책은 일상의 행복이 진짜 행복인가 되물어봅니다. 그리고 '발치'란 눈 앞의 일상을 뜻하기 때문에 자연, 일상의 행복은 책이 아닌 일상의 상식 속에 가까이 있다는 뜻이지요.
"내가 직접 확인해보지 않은 행복을 그대로 접수할 수 없으니 말이다. 남 말만 믿고 무임승차하는 것은 줏대없는 짓이니, 땀흘리지 않은 불로소득치고 실속 없는 것이 많은 법이니."
'남 말'은 타인의 견해를 뜻합니다. 그렇다면 타인의 견해는 말도 있고 글도 될 수 있지요. 다음에 '무임승차'한다는 것은 자신이 직접 따져보거나 확인해보지도 않은채 그대로 따라하거나 액면대로 믿는 것을 말합니다. 대개 순진한 어린애들이 그렇지요? 줏대 없이 남이 하는 말을 덮어놓고 따라 믿는 거. 그러니까 일이든 지식이든, 나아가 행복까지도 땀흘리지 않고 공짜로 얻는 것일수록 가짜일 확률이 크고 믿을 수 없다는 뜻이지요.
님이 말씀하신 '진리'니 '지혜'는 무엇을 뜻하는지요? 제 글 속에는 그런 단어가 없습니다. 다만 제가 알기로는 설사 평생 노동으로 일관한 농부라해서 절로 진리, 지혜를 깨달을리 없고, 지구 상의 모든 책을 읽었다고 지혜를 깨우칠리 없으며, 평생 주방을 지킨 주부라해도 마찬가지지요. 그러니 농부도 농부 나름이고, 책 읽는 이도 읽는 이 나름이며 주부도 주부 나름이 아닐까싶습니다. 펌글은 님의 말씀대로, "다만 싸우려는 자마저 자본을 가지고 싸우거나 자본의 힘을 빌리는 싸움은 자본의 위력을 재긍정하는 일밖엔 되지 않" 기 때문에 옮겨온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가 자본을 벗어날 수없는 한 '재긍정'을 하지 않는다는 게 너무 힘겨운 노릇임은 저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
그리고 G님의 또다른 답글이 달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