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론 생산자를 지향하는 90년대 흑인음악 중독자
by 블랙스콜라
태그 : 진정한앎의계기
2009/05/04   한 문화모임에서의 토론 (우리는 '앎' 에 대해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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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문화모임에서의 토론 (우리는 '앎' 에 대해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가?)(2)

계속하여 G님이 답글을 달고 대화가 이어졌다.

(G님) 

"일상은 챗바퀴인 듯 하면서도 그것을 채우고 돌아가는 스펙트럼은 다양합니다. 늘 같은 사람들을 만나고 같은 일을 하고 비슷한 상황에 있는 있는 것 같지만 틈새가 있지요. 똑같은 것으로 다가오지 않았던 경험, 어느 순간엔 깜짝 놀랄만한 것으로 받아들이셨던 일들이 님께도 있으셨으리라...? 일상에서도 그렇지만 영화에서도 그런 것들을 자주 발견하곤 하지요. '알고 있는 낯섦'이나 '몰랐던 익숙함' 같은 것들이요. (요지로 날아가는 법에 서툴러 말이 이리저리 샙니다.)

 

일상에 기대는 것이  "출세해서 돈많이 벌고 건강하고 내 가족 탈 없이 건사하는 것만을 최고의 행복으로 여기는 것" 으로 보는 건 옳고 그름이나 나쁘고 좋고의 것관 전혀 별개인 취향의 문제와도 흡사한 것 같아, 이런 식의 대화(?)들은 결국 님과 저의 시각차이로 여겨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님의 글에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하셨으니 서로의 견해를 내놓는 것을 크게 조심스러워할 것은 아니라고 여겨보면서, 다시

 

출세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것이 왜 뭔가 구린 듯한 냄새를 풍기는 것으로 변질되었는지... -사람은 기억에서 자유롭지는 못하지요. 아마도 우리 사회가 그렇게 달려왔던 기억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님께서 그처럼 짚어놓으시니 그 말이 참으로 허접하게 느껴지지 않겠습니까? 출세는 결과일 뿐, 일선에서 제 스스로가 자신을 좀더 진취적인 사람, 생산성을 높이는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단순히 사회적욕구로만 풀기엔 뭔가 놓치는 게 있다고 봅니다. (아니 또 사회적욕구면 어떻습니까? 인간이 가진 욕구들 중 하나가 아니던가요. 다만 온당치 못하게 채우려 할 때 분노해야지요.)  

 

일선이란 어쩌면 그것을 제외한 일상을 풍요롭게 -전 여기엔 경제적, 정신적인 것 모두 포함시킵니다- 하기 위한 도구이지요. 하지만 일이란 것, 보수라는 걸 노동의 착취니 몸, 정신을 제공한 것의 댓가니 하는 것으로만 생각을 푸는 건 실제 일상을 건강하게 사는 덴 별 도움은 커녕 활력마저 잃기가 십상 같습니다. 물론 노동이란 게 (본질적으로) 그렇다할지언정 그 노동 속에서 우리는 그저 아무생각도 없이 돌아가는 기계는 아니잖습니까. 일선에는 동료도 있고 그들와 맞물리는 상황도 있고 그들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숲으로 기어들어가지 않은 바에야 어디를 가든 '관계'가 존재하지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늘상 같은 삶의 반복처럼 보일지라도 결코 직선적이진 않다는 것이지요. 맞춰놓은대로 돌아가는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관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것이든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 느끼는 제 감정과의 대화이든 이 모두를 관계로 보고 싶군요-  속에 있는 한 일선 또한 그저 노동을 제공하고 댓가를 받는 곳으로만 치부하기엔 우리가 그 틈/곡선에서 마주치는 것들이 하찮지 않으며, 일선에서 제공한 자신의 시간도 자기 삶가운데 한 토막으로 소중하고 중요함을 지각하는 사람은 일선을 경제적 등식으로 풀기에 앞서 어떻게 하면 좀더 나은 방법으로 채울 수 있을까를 고민하겠지요. 그 여타의 시간을 제대로 쓰고자 하는 것을 넘어, 진짜 내 삶 내 시간을 갖기 위한 방편으로써의 거기까지도 기왕이면 건강하게 살아보고 싶어하는 것이지요. 출세라는 건 그 다음 것으로써, 그와 같은 사람에겐 또 별개의 것이기도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뛰면서, 돈 많이 벌면 또 어떤가요? 그건 건강한 게 아닌가요?

 

그런 의미로 전  "내가 직접 확인해보지 않은 행복을 그대로 접수할 수 없으니 말이다. 남 말만 믿고 무임승차하는 것은 줏대없는 짓이니, 땀흘리지 않은 불로소득치고 실속 없는 것이 많은 법이니." 하는 말씀을 다시 거론시킨 겁니다. 직접 확인이 무거운 책 속에만 있지 않으며, (출세와는 별개의 것으로) 일선까지도 건강하게 사는 사람이 그 과정 가운데서 발견하는 것은 '따라하기' 도 아니고 '무임승차'도 아니며 '불노소득'도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것이 왜 공짜입니까? 내가 고민하고 고민한 만큼 움직이는 것인데요? 여기 카페는 아이들도 상당수 드나드나 보지요? "대개 순진한 어린애들이 그렇" 다니, 아이들을 상대로 훈계한 말씀이셨던 걸 저는 님의 친절한 답변을 보고서야 아차, 했습니다.--;

 

실상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책이라고 다 같지 않고, 양서와 그렇지 못한 것으로 나눌 수 있는 어떤 등급이 있음에는 공감합니다. 다만 그 외를 제외한 평범한 일상에 대한 시선이 유연하지 못한 게 안타까웠거나 잠시 노여웠을 뿐입니다. 다양한 채널과 코드로 볼 수 없으니 또박 또박 일러주는 책은 얼마나 경이롭습니까. 한데 이 부분은 저로써도 이해가 가는 부분입니다. 다양한 채널로 바라보려해도 그리 읽힐 수 없는 일상은 또 얼마나 퍽퍽하고 단조로운지요. 하지만 그걸 얻기 위해 일상에다 시간을 할애하기엔 너무 빠뜻하지요. 아마 사람들이 다른 채널 즉, 음악, 영화, 책, 그림, 사진 등을 통해 얻는 만족엔 그런 것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타인을 통한 관계 속에서 삶의 스펙트럼은 다양해지고 연대감라는 고리를 만들어내지만, 그 고리는 때때로 눈치없이 불편하고 실속없는 잦은 오해들로 삐그덕거릴 때가 있지요. 그런 부딪침 내지 불편함은 피하면서 새로운 채널과 스펙트럼은 갖고 싶은..... 아마도 피로에 지친 탓이겠지요. 어쩌든 저쩌든 계속해 달려야 한다고 하니요.

 

 

< 님이 말씀하신 '진리'니 '지혜'는 무엇을 뜻하는지요? 제 글 속에는 그런 단어가 없습니다. 다만 제가 알기로는 설사 평생 노동으로 일관한 농부라해서 절로 진리, 지혜를 깨달을리 없고, 지구 상의 모든 책을 읽었다고 지혜를 깨우칠리 없으며, 평생 주방을 지킨 주부라해도 마찬가지지요.  그러니 농부도 농부 나름이고, 책 읽은이도 책읽는 이 나름이며 주부도 주부 나름이 아닐까싶습니다.>

 

아, 님은 개념들에 대한 명쾌한 해석을 요구하시지요? '진리'니 지혜' 니 저의 모호한 어휘 남발에 실소하지 않으셨까도 싶군요. 불과 몇 차례에 불과한 방문이었지만 님께 본 것은 님의 표현대로 '갈증'이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누군가/어느 철학자의 개념어를 가져온 것이 아니고 그저 보통사람이 대화 속에서 '뭐지?' 하고 고민하지 않는 수준으로 통용되는 일반적 언어로 사용했을 뿐입니다. -여기서 정말로 실소하시겠습니다? - 실체, 실재, 진실, 본질... 저는 이 단어들이 뭐가 어떻게 틀린지 잘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제가 그 말을 사용한 데는 어제 길게 말씀드린 그 속에 있듯이 무엇이 진짜일까 -진리 = 어김없는 그 이치- 를 알아가는 덴 책 속에만 발견하는 건 아닐거라는 것이었는데, 오늘 님의 답변을 보니 님 또한 그렇게 짚으셨군요. 한데 왜 처음엔 그리도 무색하고 퉁명스럽게(?) 전달하셔서 오해를 사게 하셨는지, 제가 되려 겸연쩍고요.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

 

<설사평생 노동으로 일관한 농부라해서 절로 진리, 지혜를 깨달을리 없고, 지구 상의 모든 책을 읽었다고 지혜를 깨우칠리 없으며, 평생 주방을 지킨 주부라해도 마찬가지지요. 그러니 농부도 농부 나름이고, 책 읽은이도 책읽는 이 나름이며 주부도 주부 나름>

 

님의 견해와 제 생각은 여기서 접점하는 듯 하군요. 처음에 님께선 이런 설명을 배제, 또는 굳이 세세히 나열하지 않은 채 견해를 밝히셨는데, 저 또한 님의 견해에 다소 반발심(?)을 갖게 된 것은 님이 설명하지 않은 그 부분에 해당하는 것이었지요. 님이 '책도 읽는이 나름'이라고 하셨듯이 제가 말씀드린 일상인 또한 그저 그렇게 손을 놓아버린 듯한 삶을 사는 이들을 말함이 아니었지요. 어쩌면 서로 같은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데... 뭔가 아쉽군요. 아쉬운 게 뭔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간간히 들러보며 찬찬히 들여다보겠습니다.

 

 

참, 펌글 말입니다. 얘기가 삐딱선을 타다보니 진중권 씨 얘기가 길어져 제가 그 글에 다른 견해라도 가진 것처럼 보이셨나본데, 전 그 글이 전하고자 하는 요지를 이해하고 있고 특별한 이견이 없습니다. 다만 사회적 비판이란 사회 바깥에서 해야만 정말 온전한 소리가 되는 건지에 대해 판단이 잘 서지 않았기 때문이었지요. (상대에게 내가 당신의 적이라는 걸 드러내지 않으면서 꼬집는 방법은 고수들의 것이잖습니까? -진중권 씨가 그런 분이라고 하는 건 아니고요- 까발리는 방법 말고도 취할 수 있는 방법이란 게 있지 않을까... 대다수의 사람들은 결국 오프라인을 통해 얻는 정보가 많으니까요. -아, 그런 의미에선 우리가 쉽게 접하는 정보 외에 다른 시선, 평형을 잃지 않은 시선들을 접하기 위한 방법으로써의 즐겁지만은 않은 독서를 권유할 수 있겠군요. 다시 원점인가요?--;)

 

제가 뭔가 단단히 잘못 본 것인지 님 말씀을 다시 폈다가 화들짝,

 

"평생 단 한 권의 책만을 읽었다는 이가 있다. 걱정마시라, 설사 단 한 권 읽지 않아도 행복전선에 하등 문제될게 없으니까. 문제는커녕 앞에서 누누히 말한대로 안 읽으면 안 읽을수록 더 행복하고, 확신에차며 룰루랄라~ 마냥 삶이 즐거울 수 있다. 일상의 상식에 기댄 삶일수록 행복전선은 더욱 발치 가까이 있게 마련이니, 당신이 행복하고싶다면 결코 책 따위에 정신을 뺏기면 안 된다."

 

저는 다시 보아도 님 말씀에서 어떤 '비하'가 보입니다. 인문에 대한 성찰과 현장 내로의 실천을 해보고자 하는 성격을 가진 카페라면 이만한 소리도 있어야지요. 제가 밑천이 짧은 소리로 성급하게 나서니 그것이 못마땅하셨다면 별 도리가 없습니다만, 그래도 인문학 관련 카페를 끌어가시는 분이신데 적어도 아카데미컬한 자세쯤은 원했던 것이지요. 책 열심히 보고, 읽고 고민한 것 일상에 열심히 대입해보고, 그리고 어디선가 자꾸 안 맞으면 풀어내보고.. 그게 아니면 비평 혹은 여러 사회적 현상들에 대한 섬세한 시선, 그 자체로 가시고요. 그런 책 속의 내용들만 가지고 고민해도 만만찮으실 텐데 어찌 그런 등급의 책을 펴보지 않는 사람들까지 굳이 옆에 놓고 비판하시는지요? 그것이 보기에 좋지 않더라는 것이지요. 님께서도 제가 다시 언급한 님 말씀을 다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안 읽으면 안 읽을수록 더 행복하고 확신에 차며 룰루랄라~" 이 말씀이 저뿐 아닌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정녕 모르시는 건지, 모른 체 하고 싶은신 건지.. 그 말씀에 대한 오해가 생기는 것 같아 제가 '친절한 설명' 운운하며 질문했던 것입니다. 님 말씀 뒤에 있는 것이 무언지 말입니다. 진정 저와 제 동료가 잘못 느낀 것인지, 그렇다면 수정하고자 했지요. 혹 다른 인문학 관련 카페는 들여다보시는지요. 굳이 함께 공부하는 이 외의 일상인들을 옆에다 놓고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건, 아직까진 본 적이 없습니다. "


J님은 다음과 같은 답변으로 대화를 마무리하셨다.

(J님)

"인문학 관련 카페를 끌어가시는 분이신데 적어도 아카데미컬한 자세쯤은 원했던 것이지요. 책 열심히 보고, 읽고 고민한 것 일상에 열심히 대입해보고, 그리고 어디선가 자꾸 안 맞으면 풀어내보고. 그게 아니면 비평 혹은 여러 사회적 현상들에 대한 섬세한 시선, 그 자체로 가시고요. 그런 책 속의 내용들만 가지고 고민해도 만만찮으실 텐데 어찌 그런 등급의 책을 펴보지 않는 사람들까지 굳이 옆에 놓고 비판하시는지요? 그것이 보기에 좋지 않더라는 것이지요. 님께서도 제가 다시 언급한 님 말씀을 다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안 읽으면 안 읽을수록 더 행복하고 확신에 차며 룰루랄라~" 이 말씀이 저뿐 아닌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정녕 모르시는 건지, 모른 체 하고 싶은신 건지.. 그 말씀에 대한 오해가 생기는 것 같아 제가 '친절한 설명' 운운하며 질문했던 것입니다. 님 말씀 뒤에 있는 것이 무언지 말입니다. 진정 저와 제 동료가 잘못 느낀 것인지, 그렇다면 수정하고자 했지요. 혹 다른 인문학 관련 카페는 들여다보시는지요. 굳이 함께 공부하는 이 외의 일상인들을 옆에다 놓고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건, 아직까진 본 적이 없습니다."  

 

*******

위 문장을 거듭해서 읽고 또 읽어봤습니다. 실로 뼈아픈 지적이자 두루 많은 것을 숙고케 하는 말씀이군요. 특히 "혹 다른 인문학 관련 카페는 들여다보시는지요. 굳이 함께 공부하는 이 외의 일상인들을 옆에다 놓고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건, 아직까진 본 적이 없습니다."  라는 부분은 차마 부끄럽기까지합니다. 이것저것 읽고 생각하노라하면서도 막상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알 지 못하며, 실천은커녕 기왕 알고있는것조차 정확한 것인지 거듭 확인하고 이해하고자하는 수준이니..... 돌아보면 적지않은 세월이건만 여지껏 이러고 있으니 참으로 더디고 미욱한 노릇이지요. 지적하신 말씀 깊이 새기며 성찰의 주제로 삼을까합니다.  


그리고 나는 다음과 같은 답글을 달았다.

"저도 모르게 끌리게 되는 두 분의 '글을 나누심' 이었습니다.

 

일이 있어 나눠서 읽다가 여유를 내어 전체가 이어지게 읽으니

부분으로 읽을 때는 마음에 걸리기도 하고, '취향 차이가 아닌가?' 라는

어쭙잖은 의문도 들던 것이 명쾌하게 해소되며

'깊은 탄복' 만 남았습니다.

 

이래저래 주워들은 흔적들을 묶어서

'아는 것은 저주이다.' 라는 문장 하나를 제가 살아가는 길의 지침으로

걸어놓았습니다.

(알아야함을 멈출 수 없기에 '저주' 입니다. 저주에 걸린 듯 앎의 꼬리를

쫓아야할 것입니다)

 

'참된 앎, 그리고 그에 대해 가져야할 자세' 에 대해 깨우침을 주신 두 분께

감사 말씀드립니다.

 

항상 행복하십시요."

이렇게 달아놓은 후 '프레시안 박쥐 평론' 사태(?) 까지 접하고 나니 나의 답글이 너무
안일했다는 생각이 팍팍 들기 시작했다. 두 상황 다 '특정한 배경을 가지고 특수한 글을
생산해낼 수 있는 사람들' 에게 '그러한 방식의 발화나 글을 쓰지 말라' 는
점잖은(?) 강요가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내 개인에게는 이번 박쥐 평론은 '차후에나 완벽하게 훑을 수 있더라도' 상당히
고마운 글이다. 습득해야할 개념어나 읽어야할 책의 목록을 짐작할 수 있는
'저자' 의 이름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나같은 녀석은 이러한 '효용' 에서
이 평론을 소비할 것이고, 저 평론의 필자인
'문화평론가' 가 언급했던 '집필을 하게한 대상' 에게는
또 다른 효용이 존재할 것이다.

취사선택을 잘 하는 것이 이토록 혼란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현명한 무기가 아닐까 한다. '이러한 글도 우리의 선택의
폭에 있다' 는 것은 '비평' 이라는 상품(생산자 입장에서는
'작품' 일 수도 있기에 이런 언급이 좀 죄송하다) 을 다양한 형태로
소비할 수 있는 '권리' 를 가졌다는 측면에서 '절대 나쁘지 않다.'

미래에 대한 빚을 지고 있다는 마무리는 비겁하지만
제발 우리의 후세에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세계를
물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쨌든 두 상황 다 나 개인에게는 생각을 많이 하는 좋은 계기였다.
관련된 분들께 감사인사드리며 물러간다. 꾸벅 (-_-)(_ _)



by 블랙스콜라 | 2009/05/04 18:50 | 트랙백 | 덧글(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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